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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의그늘]⑫헌법, 패전의 상징…일본 우익 열패감의 근간천황, "태평양전쟁 항복이 아니라 종전"…천황제 신성성 견지
아베, "현행 헌법, 승전국에 제출한 반성문…일본인이 다시 제정해야"
  •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 승인 2020.11.16 10:59
  •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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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일본 천황이 사실상 전쟁에서의 항복을 의미하는 조서를 발표한 뒤 같은해 9월 2일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가 미국 전함 USS미주리(BB-63)호에 탑승해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 지배체제로 들어갔고 천황이 전범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본은 향후 전쟁을 포기한다는 내용을 담은 평화헌법을 맥아더와 타협해 공포했다. 시게미쓰 일본 외무대신(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이 미국 전함 USS미주리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일간투데이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메이지 시대 이래 천황제에 기반한 '종교적 정치'는 일본의 보수적 애국주의의 원천으로 작용해왔다. 종교적 정치는 보수층에게 더 체화되어왔지만 문화적 정서 전반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인의 심층 정서와도 연결되어 있어서 기존 종교 시스템을 노골적으로 계승하려는 극우세력의 활동도 계속 이어진다. 일본인의 심층적 정서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야 일본의 보수 정권이 헌법을 개정하려 시도하는 이유, 한국과 사사건건 부딪치는 이유도 보이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천황의 '대동아전쟁 종결에 관한 조서'가 라디오를 타고 전해졌다. 흔히 항복선언이라고 알려졌지만 전쟁에 졌다거나 항복한다거나 전쟁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한다거나 하는 말은 없었다. 더 싸우면 일본 민족과 인류 문명이 파괴될 것 같아 국제적 공동선언에 응하는 것일 뿐 '잔학한 폭탄'으로 무고한 생명을 살상한 세력 탓에 동아시아의 해방을 위한 노력이 힘들어진 데 대해 유감을 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서 일본의 장래를 건설하는 데 노력하라는 말로 마무리하고 있다. 일본의 오류를 인정할 수 없었던 데는 천황제와 천황의 신성함을 견지하려는 의도가 들어있었다고 할 수 있다.

'천황(제)'의 신성함은 일본 보수 우익에게 특히 각인되어 있는 일본적 정신의 근간이다. 무엇보다 보수적 애국주의의 시각에서 일본의 현 헌법은 패배의 상징과도 같다. 오늘날 '일본국헌법'은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으며 모든 교전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제9조의 내용 때문에 이른바 '평화헌법'으로 불린다. 전문에서도 평화에 대해 반복해서 강조한다. '전 세계의 국민이 모두 공포와 결핍을 면하고 평화롭게 생존할 권리를 가짐을 확인한다'면서 평화를 '권리'로 천명하고 있다.

이런 내용은 패전 후 수상이었던 시데하라 기주로(弊原喜重郞, 1872-1951)가 제안하고 동북아 질서를 재형성하려는 맥아더가 타협하며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6년 11월 3일 공포돼 이듬해인 1947년 5월 3일부터 시행된 이 헌법은 간결하면서도 긍정적인 가치가 적절히 반영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헌법은 태평양 전쟁의 책임을 천황에게 묻지 않는 대신에 일본은 무장해제 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일본 입장에서는 굴욕적 사건의 상징과도 같다. 겉으로는 평화지향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그 내면을 보면 일본의 평화헌법은 패전의 증거물이다. 그런 까닭에 일본의 영향력을 다시 세계로 확장시키려면 패전의 상징과도 같은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심정적 논리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현행 헌법이 "법률도 잘 모르는 연합군 총사령부(GHQ) 소속 젊은이들에 의해 불과 열흘 남짓 만에 씌어진 것"이라며 "일본 헌법은 일본인의 손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행 헌법은 "패전국 일본이 승전국에 제출한 반성문"과 같으니 일본인이 다시 제정해야 일본이 진정한 독립국이 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헌법 9조를 개정해 '보통국가'로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군대를 보유해 유사시에는 전쟁도 가능한 나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입장은 패전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은 과거 지향적 욕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과 정서가 일본 안에서는 한국 비판적 행동의 동력으로 작동한다. 아베 정권이 내세우던 '적극적 평화주의'는 정치·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해 일본중심적 국제질서를 만들어가겠다는 전략이다. 옛 '대동아공영권'의 전략과도 구조적으로 비슷하다.

이런 일본의 전략에서 한국은 그 숨은 목적을 적나라하게 경험해본 역사적 현장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침략 사실을 외면하려는 아베와 그 계승자에게는 걸림돌이다. 이것은 우익이 주도하는 현재 일본 정치가 한국 및 중국과 친해질 수 없는 근본 이유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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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dtoday24@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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