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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칼럼] "비대면 강의를 듣는 우리 대학생들을 더 잘 가르치려면 듣고 싶은 강의의 장벽을 없애야"
  • 김종훈 칼럼리스트
  • 승인 2020.11.24 19:04
  •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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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일간투데이 김종훈 칼럼리스트] 편의점 카운터에서, 패스트푸드점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비대면 강의를 듣는 우리 대학생들을 더 잘 가르치려면 그들이 듣고 싶은 강의의 장벽을 없애야 한다.

사회생활에 꼭 필요해서 누구나 수강하고 싶어 하는 자바 프로그래밍이나, 3D 디자인, 영상 편집, 디지털 회로 설계 등은 비대면 강의의 물결을 타고 경직된 전공의 벽을 넘는 담쟁이 넝쿨이 되어야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 앞에서 “라떼는~ “ 이라고 운을 뗄 수 있을 만큼 험한 삶을 살아낸 어른도 이제 많지 않다.

알바도 하고, 근로장학생도 하고, 국가장학금이나 학자금 융자도 알아보고, 강의와 과제, 시험준비까지 묵묵히 해내면서 코로나19로 닫힌 취업관문, 암담한 미래에 대한 고민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원 시급 알바로 종부세를 걱정할 만한 아파트를 소유하려면 100년을 모아야 한다.

6%의 높은 종부세를 내야 하는 사람은 전국에 20명 남짓인데, 100년 알바를 해도 그런 집을 소유할 수 없는 젊은이들은 수백 만 이다.

그들이 힘없고 소리를 높이지 못한다고 언론의 초점에서 소외된 현실이 안타깝다.

실시간 비대면 강의를 할 때 화면 너머로 고단한 제자들의 삶이 노출될 때가 있다. 편의점에서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강의를 듣는 학생도 있다.

따로 카메라를 켜고 있으라고 부탁하지 않으면 이런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끈 상태에서 강의를 듣는다.

몇 분 스쳐 지나가는 편의점 카운터의 뒷배경이나 주방에서 일하면서도 휴대폰을 기대어 놓고 강의를 듣는 모습이 참 소중하고 아프게 마음에 남는다.

미안하도록 고단한 우리 학생들의 삶에 큰 보탬이 되지 못하는 교육자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카메라를 끄고 있으면 수업시간에 혹시 놀거나 자고 있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분도 있지만 다른 이에게 보일 수 없는 환경 속에서 학생들은 이전보다 더 진지하게 강의를 듣고 있다.

졸업논문,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졸업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데, 다른 해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이 들어 있고, 더 재미있는 결과물들을 만들어 낸다.

강의 첫 시간에 교수가 “뭘 만들고 싶니? 이번 학기엔 그걸 만들어 보자.”고 강의를 시작할 수 있는 과목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런 성격의 강의를 3학년 2학기 이상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작해서 졸업작품을 연계하여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보다 힘든 사회적 격리기간 속 4학년을 보내는 졸업반 학생들이 만든 작품을 보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낸 의지가 엿보인다.

물을 뿜어내는 마지막 사진으로 폭소를 자아낸 방수 블루투스 스피커가 내장된 강아지 샤워헤드, 나노입자가 함유된 화장품 설계에서 여기에 적합한 용기 설계, 에너지가 넘쳐서 만든 해당 제품 리플렛, 박스 디자인, 결국 제품 판매 기획서까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한계까지 해내고 있다.

어떤 잘난 어른들보다 마스크를 잘 써서 코로나 예방의 최강자인 우리 유치원생들의 교육환경은 어떠한 가, 예술관련 지식은 K-팝과 방송 댄스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청소년들이 더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의 근간을 세우기 위해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세월호 사건 관련 진상 조사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야 코로나19 대유행의 터널 끝에서 급격히 노화되어 가는 사회를 짊어질 우리의 미래가 건강해질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AI교육이 시작된다고 한다. 4차산업 혁명과 판데믹 상황이 절묘하게 맞물린 현재의 국가적 경쟁력 강화를 위해 꼭 필요한 지식이어서 선택된 방향이다.

옳다. 그렇게 시작된 교육은 초중고 과정의 코딩교육을 거쳐 강력한 다음 세대를 키워낼 것이다. 이 교육의 물결이 만나야 할 험난한 고비는 우리 안에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AI교육을 한다고 하는데, 대학에서는 전공 이외의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터부시 한다. 석박사 대학원 과정에서는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더 깊이 더 좁게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확언할 수 있다. AI교육은 대학 입학과 함께 멈춘다. 지금과 같은 경직된 교육제도라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신나게 코딩교육을 받고 나서 만나는 대학은 교수님들의 전공 외에 타과 강의를 듣는 것도 쉽지 않고, 학과를 옮기는 일은 더더욱 힘들다.

대학원생이 전공분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전공 지도교수를 바꾸고 싶다면 흔쾌히 승낙하고 도울 교육자가 있을까? 대학원에서 전공 지도교수를 옮길 수 있는 기회는 하늘의 별이 내려와 머리를 후려칠 확률보다 낮다고 할 정도다.

대학의 경직성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저울과 채찍, 국비지원의 당근을 손에든 교육당국의 평가도 일조하였다.

취업교육이 중요하다고 인식되면 해당 분야에 대한 지원을 해주고 자금집행과 수행이 잘 되었나 감독하면 될 일인데, 얼마나 취업교육을 잘 했는지 평가항목을 만들어 항목 별로 점수를 부과하고 학교별로 등수를 매긴다. 그 순간, 엄격한 잣대가 대학을 지배한다.

이런 환경에서 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평가하기 위해 일만 가지 항목을 만든다고 자율성과 다양성이 평가될 리 없다.

인기 있는 과목이 있다면 인기가 없어도 꼭 필요한 과목의 중요성도 강조해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일례로 오늘날 초중고 수학교재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어’다. 물리화학 교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초등학교 자녀의 교과서에 대학에서 가르치는 내가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수학, 과학 문제들이 눈에 띈다. 대기업의 기술소개 안내 자료에 어법에 맞지 않는 해괴한 문장이 보인다.

예전에는 대기업 구인 대상에 국문학 전공자가 있었다. 올바른 글은 정확한 의사전달과 공유의 매개체다. 비대면 인문학교육이 우리의 과학기술을 더 명확하게 기록하고, 고민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제 우리의 경쟁자인 중국에도 없는 학점 상한을 없애야 한다. 캐나다의 스콧 영이라는 젊은이가 MIT의 OCW를 통해 MIT 컴퓨터공학과의 4년 과정 33개 과목을 1년만에 MIT에 다니는 학생과 수준차이 없이 이수하였다.

한 학기에 18학점, 21학점 이상은 들을 수 없다는 규정 따위, 전공필수 과목이 주는 전공지도의 철밥그릇 따위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난한 우리 청년들을 경계 없는 지식으로 살찌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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