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무종교'라지만 신도 통해 '종교적인' 삶 살아
조상제사 통해 천황 이어지는 '문화정치' 행위에 포섭돼

▲ 일본의 온라인 상점에는 우리돈 10만원 정도 하는 간단한 '가미다나'(왼쪽)에서부터 100만원 이상 가는 다양한 '부쓰단'(오른쪽)들이 판매용으로 즐비하게 게시되어 있다. 일본 제사문화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사진=일본아마존에서 캡쳐.
[일간투데이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보통의 일본인에게 '나는 무종교'라는 말은 익숙하다. 자신에게는 종교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특정 종교단체에 속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분석하면 일본인은 여러 가지로 '종교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도의 국가화 과정을 설명하며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상당수 일본인은 문화화한 애니미즘적 혹은 자연신앙적 종교성을 여전히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종교사회학자 이노우에 노부타카(井上順孝)는 가령 일본의 민속 행사도 그저 의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연중행사와 인생의례 등이 완전히 세속화된 것은 아니며 여전히 종교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신도습속이라고 부를 만한 많은 전통적 습속의 기본적 기능은 변함이 없다. 또한 근대에 새롭게 퍼진 습속이라 해도 그 배후에는 전통적인 종교 관념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저 자연신앙적 종교성만 그런 것이 아니다. 조상제사를 강조하며 천황가에 대한 제사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온 메이지 정부의 '종교적 정치'로 인해 일본인에게는 망자의 혼령을 위로하는 위령(慰靈) 행위가 어색하지 않다.

2004년 통계이기는 하지만 일본인의 44% 정도가 집안에 조상의 신위나 각종 신상, 신사에서 발행하는 오후다(부적), 종교적 상징물 등을 모신 '가미다나(神棚)'를 두고 있고 절반 가량이 '부쓰단(佛壇)'을 모시고 있다. 선물이 들어오면 부쓰단에 올려두고 조상신이나 가미에게 먼저 신고하곤 한다. 부쓰단과 가미다나를 모두 설치하는 경우도 제법 된다. 한국에서는 거의 사라진 이른바 '신주단지'를 많은 일본인들이 여전히 모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적 상황에서 보면 망자에 대한 위령 행위는 어색하기는커녕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서구 문명을 수용하면서 조상신과 급속히 단절해온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조상과의 연계성 속에서 산다. 이것이 메이지 정부 이래 강화되었다 보니 조상의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정점에 대해 상상하다 보면 천황가의 기원과도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의 조상제사는 자신도 모르게 행해지는 일종의 '문화정치적' 행위의 연장이기도 하다.

오늘까지도 위령은 일본적 종교의례의 기본이다. 흔히 종교에는 신도(神道)도 있고 불교도 있고 유교도 있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일본식 위령 행위는 신도적일 뿐만 아니라 불교적이기도 하고 유교적이기도 하다.

위령은 조상 제사의 이름으로 불교화하기도 하고 유교의 주장 속에 녹아들어 가기도 하는 등 종교적 정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여러 종교들이 자기 식대로 위령 행위를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일본인의 오랜 위령 행위가 불교나 유교 혹은 신도의 모습을 입고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위령 행위가 특정 교단의 종교의례보다 더 근본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조상 제사를 강조해 온 천황제를 통해 강화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셈이다.

위령 제사는 천황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유학자 가지 노부유키(加地伸行)는 천황가의 종교 행위가 일본인의 모습을 잘 나타내준다고 말한다.

"천황가는 신도에 근거하여 지금도 궁중의 현소(賢所)에서 선조 제사를 지내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일본인은 불교에 근거하여 집안의 부쓰단(불단)에서 선조 공양(선조 제사)을 하고 있다. 그런데 둘 다 바꿔 말하면 샤머니즘적이고 유교적이다. 천황가는 일본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머니즘과 조상 제사, 그리고 그 계승으로서의 유교가 천황제를 통해 일본적인 종교 형태로 자리 잡아 왔다는 뜻이다. 유교만이 아니라 불교가 동일한 기능을 해왔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신도와 불교는 오랜 세월 습합되어 왔다. 어떤 언어를 쓰든 사후 혼령과 적절히 관계 맺는 정서와 자세가 일본 종교문화의 근간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바로 이런 지점을 기반으로 지금도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고 전개되어 온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일본의 오랜 제사 문화를 정당화하고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천황제를 유지시키는 근간으로 작용한다. 이런 식으로 일본은 메이지 정부 이래 제사와 위령의 나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이 자신은 '무종교'라고 말한다는 사실과 관계없이 어느 정도 '종교적'이다. 이러한 종교성이 국가에 의해 강화되어왔다는 점에서 상당 부분 '국가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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