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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의 그늘]⑳'버려진 국민'과 '졸선이양지'(卒善而養之)강력한 '국가·국가주의'만 있고 '국민'이 없는 일본
과거사 화해·정리 위해 한·일 대화·교류 강화해야
  •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 승인 2021.01.18 12:31
  •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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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나가사키 사세보에는 1922년에 일본해군에서 설치한 136m 높이의 무선송신탑 3개가 300m 간격을 두고 삼각형 모양으로 세워져 있다(왼쪽). 일명 하리오송신소(針尾送信所)이다. 이 송신탑을 통해 일본해군은 이미 100년 전에 한국은 물론 대만의 군사 상황까지 무선으로 주고받을 수 있었다. 2017년 필자는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들과 함께 이 시설을 돌아보고 서로 토론하는 모임에 교수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일본 대학생들은 하리오송신소를 일본의 앞선 기술을 상징하는 근대 유산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한국 대학생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오른쪽). 양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자주 만나고 대화해서 서로 다른 관심사들 간의 접점을 확대해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사진=이찬수
[일간투데이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한일 관계는 복잡하게 꼬여있다. 단기간에 풀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일본의 총리가 바뀌었다고 한반도 정책이 갑자기 바뀔 리도 만무하다. 정책을 바꾼다는 것은 기존 정책의 한계를 자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일본 정부의 기존 정책이 옛 영화에 대한 회고 및 회복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수 세력일수록 기존의 정책적 기조를 계속 소환하고 계승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일본을 대하는 한국인의 정서도 일종의 정신적 외상과 연결되어 있기에, 외교관이나 외교 정책 몇 가지를 바꾼다고 대일 관계가 급속히 호전되는 것도 아니다. 한일 관계의 전환은 양국 국민이 밑바닥에서부터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장기적 노력을 기울일 때에야 가능하다. 특히 양국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물론 이것도 낙관적이지 않다. 한국 시민사회와 일본 시민사회의 활동 범주와 성격이 다소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상대적으로 중앙 정치에 관심이 많은 데 비해 일본 시민사회는 지역 정치, 생활 정치에 더 관심이 많다. 일본 시민운동가들 상당수가 1960년대 안보투쟁에 참여했던 장년·노년층이고 젊은 층일수록 정치, 특히 중앙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도 일본의 대한 관계가 극적으로 바뀌기 힘든 구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게다가 일본은 한국(남한)에 비하면 인구는 2.5배, 영토는 3.8배 큰 만큼 중앙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정도가 한국과는 다르다. 메이지 시대 이전까지 지속되어 온 지방 단위 봉건체제의 영향력이 여전히 남아 있고 그만큼 한국보다 지방색이 강하다. 중앙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을 한국에 비하면 크게 느끼지 못했다는 뜻이다.

특히 일본의 젊은이들은 20세기 역사를 제대로 배워본 경험이 없다. 일본의 사회나 역사 교과서들은 반성적 성찰은 별로 없이 일본이 전 세계를 무대로 배우고 활동한다는 긍정적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내용이 많다. 한국의 역사교육에도 문제가 있지만 일본은 더 심각하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와 중국 침략을 모르는 청년들도 많다.

당연히 일본이 가해자라는 인식도 없거나 약하다. 가령 일본은 '패전'이라는 말보다는 '종전'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라 그저 전쟁일 끝났을 뿐이라는 인식이 크다. 전쟁의 원인에 대해 성찰할 기회가 별로 없다.

일본의 국·공립 평화박물관들은 일본은 원폭에 의한 전쟁 피해자라는 의식으로 가득하다. 이렇게 많은 피해를 낳으니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왜 전쟁이 일어났고 누가 일으켰는지에 대한 성찰이 별로 없다. 전쟁의 원인에 대해 별로 배우지 않는다. 일본식 평화도 대체로 거기에 머문다.

이런 상황에서 침략의 역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의 목소리는 사실상 '쇠귀에 경읽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일본의 국민적 상황이다. 일본이라는 '국가'는 있지만 사실상 '국민'은 없었기에,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사과해야 할 주체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지의 그늘'은 지금도 어느 정도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재일 사상가 강상중 교수가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 메이지 이후의 일본'(2020)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제목 그대로 메이지 이래 일본이라는 '국가'는 강력했지만 '국민'은 국가 안에 함몰되었다는, 한 마디로 '버려졌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이곳에서는 살아있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무기질적 권한과 규칙, 관행만 남아 있을 뿐이다…일본은 마치 국가를 위하여 국민이 존재하는 것처럼 도착된 상태였다. 국민 없는 국가주의만 팽창했다"(214쪽)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메이지 시대 '화혼양재'를 기치로 내걸었을 때 이미 시작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화혼양재는 '일본적 정신[和魂]으로 서양적 기술[洋才]을 받아들인다'는 뜻이지만, 강상중에 의하면, 서양적 지식과 기술에 목적과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가 일본적 정신이었기에, 일본의 서양식 문명화, 사실상 군국주의화 자체에 대한 비판은 불가능했다.(216쪽 참조)

일본적 정신, 즉 '화혼'은 '상징적인 권력으로서의 국체'였고 이를 짊어져 온 이들이 관료였다. 강상중에 의하면, "관료는 화를 낼 줄도, 미워할 줄도 모르는 정교한 기계처럼 행정을 처리했다". 기술을 짊어진 인텔리는 관료 사회를 바꾸지 못한 채 이러한 화혼의 바깥쪽 하위 집단으로 머물렀다.(215쪽) 이런 식으로 국민은 정권을 바꾸기 힘들었고 국가를 넘어서지 못하는 하위의 존재로 내몰렸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일본이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한일기본조약'(1965)이나 '한일외무장관회담'(2015)과 같은 정부나 국가 단위의 합의로 다 해결되었다고 내내 강조하는 것은 그저 정치적 전략이나 술수만이 아니다. 근원적으로는 일본의 오랜 정치적 정서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실제로 국가 단위의 협약을 중시하며 이것을 번복할 명분을 찾기 힘든 나라이다. 일본 국민도 국가 간 합의는 불편해도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정상 간 합의도 국민적 합의가 없이 정해지면 저항하는 한국적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정부 간 협의를 했는데도 거부하고 반대하는 한국인의 모습이 일본인에게 약속을 어기는 행동, 믿기 힘든 나라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강상중의 표현을 빌려오면, '국가'와 '국가주의'는 있지만 '국민'은 없는 일본의 현실에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는 것이다.

싫든 좋든 한국인은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서 양국 간 공감대를 찾기 위한 장기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도 그런 길에 나서주기를 지속적으로 요청하면서 말이다. 수천 년을 인접 국가로 살아온 마당에 다른 데로 이사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일본의 문화적 문법과 역사적 현실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도 강화시켜 일본으로 인한 남남갈등도 줄여야 한다. 그래야만 그 공로도 결국 한국으로 돌아온다. '졸선이양지'(卒善而養之, 적을 잘 대해 같은 편으로 키운다(손자병법))의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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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dtoday24@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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