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는 18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에게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뇌물을 건넨 혐의로 지난 2016년 11월 국정농단 사건의 참고인 신분으로 첫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지 약 4년 2개월 만이다. 삼성으로서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투자라고 봤겠지만, 법원은 이를 뇌물로 본 것이다. 삼성은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내 다스 소송비도 대납해 전직 두 대통령을 법의 심판대에 서게 했다. 그러면서 본인과 임원들도 함께 구속됐다.

압축성장의 한국 기업사를 보면 뇌물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정권과 밀월관계를 통해 부침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도 나치 정권에 빌붙어 승승장구했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쇠락한 쉰들러가 연상된다. 하지만 그 쉰들러는 나치정권하에 학살의 위기에 처한 유대인들을 구하는 선행을 한 것으로 더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은 정권과 결탁해서 누구를 위해 선행을 했는지 묻고 싶다. 군사 정권하에서는 알아서 뇌물을 바쳤지만, 문민 정권에서는 뇌물을 흥정의 지렛대로 사용한 게 이번 법원의 판단이었다.

기업으로서야 투자의 한 수단으로 여겼겠지만, 엄연히 법으로 규정된 사안을 넘어서는 행위라는 점에서 그 법망을 피해갈 수는 없다. 정상적인 기업과 공직사회는 엄연히 윤리규정을 두고 있고 우린 여기에 더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도 두고 있다. 지난 2015년 3월 27일 제정된 법안으로 금품 수수 금지, 부정청탁 금지, 외부강의 수수료 제한 등의 세 가지 축으로 거의 모든 공직자에게 해당한다. 밥 한 끼 제대로 받지 못하도록 하는 엄격한 잣대이다. 하물며 수십억 원을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빌미로 역대 정권을 농락한 죗값치고는 법원의 선고는 솜방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린 되돌아봐야 할 여러 사안이 있다. 아직도 우리는 정권에 밉보이면 기업을 할 수 없는 나라인가이다. 삼성은 누가 뭐라 해도 세계 반도체와 휴대전화 등 가전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이다.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변동성을 주도하고 있기도 하다. 삼성전자 주가에 따라 한국거래소의 주가지수가 등락한다. 그런 삼성이 정권 때마다 뇌물공여라는 구설에 바람 잘 날 없는 날이 없었다. 협력업체에는 한없이 무자비한 삼성이 정권에게는 알아서 받치는 뇌물은 철저히 계산된 투자였다. 정권에 기생해서 성장해야만 하는 기업의 잔혹사라고 하기에는 조금 멋쩍다. 삼성 정도면 이젠 정도 경영을 해도 문제가 없지 않나. 정권의 끈질긴 뇌물 요구에 단호히 거부할 줄 아는 삼성이었어야 했다. 최순실이라는 비선 실세를 찾아내 굽신굽신 청탁하는 모습은 왠지 초라해 보인다. 이번에 이 부회장과 함께 실형을 선고받은 삼성 임원들은 로비의 달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주군과 함께 구속이라는 화를 피하지는 못했다. 구속을 각오하고라도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정한 청탁의 대가가 국민연금을 통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그리고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혐의 등으로 구설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수십억 원의 뇌물로 수조 원과 경영권까지 거머쥘 수 있는 달콤한 투자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스갯소리가 있다. 회장이 구속되면 회사가 더 잘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정권이 구속된 회장에게 뇌물을 요구할 수도 없을 그뿐만 아니라 회사는 구속된 회장 때문에 비상 경영체제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 소리다.

말로는 글로벌 1등 기업을 목표로 하면서도 뇌물과 회계부정으로 연명하려는 기업사를 이젠 컴퓨터 자판기 키인 딜리트와 리셋 키를 눌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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