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응 혼란 속 도쿄올림픽 개최 '먹구름'

스가, 회식 물의…정치불신 팽배

"정치인 모범을…긴급사태 철저하게"

 도쿄 관광지 북적·유흥가에서는 
 호객행위…노래방·파친코 정상영업

'民度' 높다더니 강제 조치 추진…
 크루즈선·고투 트래블 혼란 반복

 

"꽤 익숙해져 버린 것 같아요. 뉴스도 온통 코로나 이야기라서 피곤하네요."(70대 자영업자 야마모토 씨)

"긴급사태 선언을 하려면 더 철저하게 하면 좋겠습니다."(40대 파트타임 근로자 오카다 씨)

전 세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1억 명에 육박한 가운데 일본 시민들의 이야기에서 혼란스러움이 묻어났다.

■갈팡질팡 정책·정치 불신·피로감 속에 감염 확산

일본은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과 더불어 누적 확진자가 많은 아시아 주요 국가로 손에 꼽힌다. 동아시아에서는 가장 많다.

장기간 이어진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피로감, 일관성 없는 정책, 허술한 방역 규제 등이 뒤섞여 불만을 키우고 코로나19 확산까지 부추기는 양상으로 보였다.

기사에 이름을 쓰지 말라고 요청한 한 20대 회사원은 여행 장려 정책 '고투 트래블'(Go To Travel)로 예약하고 지난달 현금성 쿠폰을 받았는데 그날 정책이 중단돼 사용할 수 없게 됐다며 "쿠폰을 나중에 쓸 수 있는지 물었는데 제대로 된 답변도 없어서 불신이 생겼다"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고투 트래블 추진이 문제라는 의견이 많지만 다수 의견에 묻혀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결이 다른 불만이다.

고투 트래블을 이용하려고 했던 사람은 갑작스러운 정책 중단으로 당장 자신이 겪은 불편에 더 큰 의미를 둔 것이다.

정치인들이 신뢰 상실을 자초한 측면도 크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국민에게 회식 자제를 당부해 놓고 작년 연말 송년회를 했다가 물의를 일으키면서 정부의 협조 요청은 권위를 상실했다.

식품업체 사장인 다마키 씨는 "정치인이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청한 50대 자영업자는 "정보 수집이 매우 서툰 것인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 알고 (정책 결정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상황을 알면서도 이런 대응을 한 것이면 최악"이라고 비판했다.

■허점투성이 긴급사태…"민도 다르다" 자랑하더니 강제조치 추진

이런 상황에서 긴급사태 선언이 제대로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의 행동에서 그런 조짐이 보인다.

예를 들어 스가 총리가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외출은 음식점이 문을 닫는 밤 8시 이후뿐만 아니라 낮에도 삼가도록 요청한다"고 기자회견에서 당부한 뒤 첫 일요일인 17일 도쿄도(東京都)의 관광지인 센소지(淺草寺) 인근은 행락객으로 북적였다.

상점가에는 나들이객의 발길이 이어졌고 인력거꾼들이 입 근처만 겨우 덮는 '마우스 실드'를 착용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평소라면 직장인이 퇴근 후 한잔하러 자주 가는 도쿄 신바시(新橋)역 주변 유흥가의 야간 유동 인구는 눈에 띄게 줄었다.

20일 오후 8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둘러보니 대부분의 주점이 영업을 마치고 정리 중이었다.

일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사태가 발효 중인 가운데 20일 오후 도쿄도(東京都) 신바시(新橋)역 인근에서 유흥업소 종사 여성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영업시간 단축 요청을 무시하고 장사를 계속하는 업체도 일부 있었다.

영업을 단축하면 하루에 6만엔(약 64만원)의 협력금을 주는데 이 정도 지원으로는 가게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하는 이들은 사회적 압력을 감수하고 장사를 계속하는 셈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가 앞서 일본은 강제력 없이 부탁만 해도 국민들이 잘 협조한다며 "민도(民度) 수준이 다르다"고 큰소리쳤지만, 코로나19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불만이 여러 가지 형태로 표출되는 양상이다.

결국 일본 정치권은 긴급사태 때 영업 단축을 거부하면 과료를 부과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파친코·노래방·헬스클럽 영업…유흥업소는 호객행위

감염 확산이 이렇게 심각하면 당연히 휴업 혹은 금지 대상일 것 같은 시설도 버젓이 영업 중이다.

예를 들면 노래방, 파친코, 헬스클럽(피트니스센터) 등은 별 제약없이 영업 중이다. 신바시 일대에서는 파친코 이용자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여전히 게임 삼매경에 빠진 이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작년 봄 감염 첫 긴급사태 때는 일부 지자체가 휴업하지 않는 파친코 업체명을 공표하며 압박했는데 이번 긴급사태 때는 파친코는 법령에 의한 휴업 요청 대상에서 제외됐다.

관할 미나토(港)구청의 호객행위 단속요원이 순찰하고 있었으나 유흥업소 직원들은 가격과 메뉴를 외치며 손님 확보에 여념이 없었다.

단속요원은 "확인 사항을 점검하지만, 허가를 받았다면 금지하지는 않는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전체적으로 야간 영업은 대폭 줄었으나 낮에는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모습을 도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밤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척하지만, 낮에는 경계수위가 낮아지는 셈이다.

일부러 마스크를 거부하는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활보한 미국과 비교하면 일본인들은 당국 지침에 대체로 순응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에 따르지 않는 소수에 대한 제재는 사실상 없으며 당국의 방역 지침 자체도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느슨하다.

확진자 집계를 보면 바이러스는 틈새를 비집고 빠르게 퍼지고 있다.

지난 23일 일본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 4천717명이 새로 파악돼 누적 확진자는 36만2천445명으로 늘었다.

하루 신규 확진자는 5일부터 19일 연속 4천명을 웃돌았고, 사망자는 연일 100명 안팎을 기록해 누적 5천77명이 됐다.

■혼란·시행착오 거듭한 일본…"올림픽 어렵다"

지난 1년간 일본은 코로나19 대응으로 혼란과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작년 2월 확진자가 나온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승객을 선내에 대기시키면서 감염이 급격히 확산해 712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무렵 일본 내 지역 감염이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는데 유전자 증폭(PCR) 검사가 부족해 비판이 쇄도했고 한국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작년 3월 24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1년 연기를 선언했고 이후 일본은 사상 첫 긴급사태를 선언했다.

49일에 걸친 긴급사태를 거쳐 일본의 하루 신규 확진자는 수십 명 수준까지 줄었는데 돌이켜보면 이때가 그나마 가장 안정된 시기였다.

작년 7월 당시 관방장관이던 스가가 주도해 고투 트래블을 밀어붙였고 비슷한 시기에 확진자가 현저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스가 총리는 각계의 비판과 권고에서 고투 트래블을 비롯한 경기 부양책을 강행하다 사태가 매우 심각해진 이달 8일에서야 도쿄 등 수도권 4개 광역자치단체에 긴급사태를 다시 발효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일본의 하루 신규 확진자는 7천882명으로 최다 기록을 세웠다.

어정쩡한 정책, 신뢰를 상실한 리더십, 쌓인 불만이 결합하면서 스가 총리가 경기 부양을 위한 유일한 호재로 생각한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에도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상황이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 약 20명에게 코로나19, 정부 정책, 올림픽 등에 관해 물었더니 10명이 답을 했는데 이 가운데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개최에 긍정적으로 반응한 사람은 1명뿐이었다.

유일한 긍정론은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 더 감염자 수를 줄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는 취지였다.

나머지 9명은 '신속한 결단이 필요하다', '이런 상태로는 무리', '안 하기를 바란다', '솔직히 어렵다'는 등의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올림픽을 재연기하거나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은지는 꽤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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