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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보훈의 재조명]민족과 탈민족의 경계에 선 보훈시효 다한 국민국가적 보훈…새로운 대안은 무엇인가
초연결·다문화사회 부응, 일반인에게도 호소력 있는 보훈 확립
  •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 원장
  • 승인 2021.03.08 10:57
  •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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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와 독일은 역사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전쟁을 치루며 서로가 서로에게 철천지 원수와 같았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미국의 냉전 체제 속에서 화해와 협력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종 조약을 맺으며 최고의 우방으로 거듭났다. 1963년 1월 22일 프랑스 엘리제궁에서 양국 정상 드골 대통령(오른쪽)과 아데나워 총리가 만나 엘리제 조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어

[일간투데이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 원장] 2021년은 국가보훈처 창설 60주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하 보훈공단) 창립 4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오늘날 보훈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고 보훈의 사회적 가치를 재조명할 수 있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보훈공단 산하 보훈교육연구원은 그 동안 보훈의 주요 가치인 독립·호국·민주 정신의 기억과 계승이 국민통합과 사회발전으로 선순환 되도록 다양한 연구와 교육을 통해 보훈문화의 정립과 확산을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올해는 보훈처 창설 60주년을 맞아 <일간 투데이> 기획연재를 통해 보훈의 역사, 의미, 가치를 더욱 폭 넓고 깊이 있게 되짚어 나감으로써 보훈의 새로운 미래를 밝힘과 동시에 포용적 보훈 문화의 확산을 도모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현대보훈의 과제, 어떻게 국민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것인가

보훈은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宣揚)하고 그와 그 유족 또는 가족의 영예로운 삶과 복지향상을 도모하며 나아가 국민의 나라사랑정신 함양에 이바지'하는 행위이다.(국가보훈기본법 제1조 목적) 이 규정의 키워드는 '국가', '희생', '공헌'으로 정리할 수 있다. '선양', '애국(나라사랑)'이라는 두 낱말을 추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키워드들에 대해 일반 국민은 그다지 친근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거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저마다 열심히, 때로는 치열하게 살지만 '국가'를 위해 딱히 '희생'이나 '공헌'을 한다는 의식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다소 특별한 희생과 공헌의 사례를 일반 국민의 애국심 함양으로 이어가려는 정부의 시도가 '국가주의적'이라고 여겨지는 데서 오는 불편감도 있다. 성격상 국가주의적인 '보훈'이라는 말이면 충분한데도 각종 법령에서는 물론 연구자들조차 '국가보훈'이라는 용어를 종종 사용하곤 한다. 이러한 국가주의적 분위기는 개인주의에 기반한 세계적 초연결의 시대와 겉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면서 보훈을 대중화·일반화시키려는 과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국가보훈'의 의미와 목적은 얼마나 설득력 있고 국가중심적 보훈 정책은 얼마나 성공적일 수 있을까. 보훈이 국가 전체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과제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러면서도 시대적 흐름과 괴리되는 듯한 분위기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보훈의 정책과 방향을 어디로 어떻게 잡아나가야 하는 것일까. 보훈이 국민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 국가유공자의 명예와 함께 지속가능성도 담보하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근대보훈, 공동의 적과의 대항과정에서 치른 특별한 희생에 대한 연대의식 표현

근대 이후 회자되어온 국가는 이른바 '국민국가'를 의미한다. 국민국가는 영어로 'Nation-State'이니 민족국가라고 해도 별 차이가 없다. 근대 국가의 형성이 민족주의의 형성과 궤를 같이 해왔다는 뜻이다. 민족의식과 영토의 경계를 전제로 하는 근대국가 형성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의 보훈에 담긴 국가주의적 흐름을 어떤 방향으로 잡아가야 할지 그 우회로도 보인다는 뜻이다.

민족주의는 민족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민족의식은 억압과 피지배에 대한 대항 정신으로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대항 과정에 겪은 희생에 대한 공감이 다시 민족의식을 북돋운다. 가령 수십 개의 영방국가(Territorialstaat)로 나뉘어 있던 옛 독일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으면서 피해 의식이 커졌고 이 피해 의식이 영방국가들을 연대시키는 형태로 나타났다.

프랑스에 점령당한 베를린에서 피히테(J. G. Fichte)는 독일의 각 영방이 독일어와 독일문화 교육을 강화해 상호 연대 의식을 함양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 내용을 담아 '독일 나치온(민족/국민)에게 고함'(1808)이라는 제목의 유명한 강연을 했다. 강력한 공동의 적이 출현하자 뚜렷한 동료의식이 없던 사람들 사이에 누군가의 희생을 떠올리며 연대적 공유의식이 생겨나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와 비슷하게 프랑스의 르낭(E. Renan)은 독일에 패배했던 프랑스인의 입장에서 '나시옹(민족/국민)이란 무엇인가'(1882)를 저술했다. 르낭은 이 책에서 "나시옹은 개인과 마찬가지로 노력과 희생과 헌신으로 이루어진 오랜 과거의 결과"로서 "나시옹은 사람들이 과거에 했고 또 앞으로도 하려는 의사가 있는 희생의 감정으로 구성된 위대한 연대감"이라 규정했다. 민족/국민의 개념이 적의 도전에 희생을 무릅쓰고 연대하던 이들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피히테가 "고귀한 사람은 기꺼이 나치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웅변을 한 것과 통하는 대항 의식을 잘 보여준다. 르낭과 피히테 모두 민족/국민 개념의 밑바탕에서 구성원들의 저항에 의한 희생의 감정을 보면서 이 희생이 민족/국민의식에 기반한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문제는 국민의식이 커지면서 국가는 견고해지지만 동시에 국민과 국민이 서로 부딪힌다는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라는 것이 집단중심적 의식을 동일성의 논리로 포섭해 구성원들을 통일시켜 가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동일성을 공유하지 않은 타자에 대해서는 적대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체제인 것이다.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 원장은 초연결·다문화사회로 변화된 현실에 맞는 장기 비전을 갖는 새로운 보훈상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사진=한국보훈교육연구원장

■초연결·다문화 사회에 맞는 장기 비전을 갖는 새로운 보훈상 정립 필요

그러나 불과 몇 십 년이 지난 이제 이 두 나라는 '유럽연합' 체제 속에서 더 이상 부딪히지 않고 부딪혀서도 안 되는 환경으로 급격히 전환했다. 한때는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하던 나라들이 이제는 같은 화폐를 쓰고 자유롭게 여행하며 지내고 있다. 근대 국민국가의 견고한 경계가 무너져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견고한 경계에 기반한 적대성보다는 탈경계적 이웃으로서의 의식이 더 커져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보훈의 경우는 어떤가. 우리의 보훈의 기초에도 일제에 대한 저항과 그 과정에 겪은 희생, 북한과의 전쟁으로 인한 희생과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 같은 것이 놓여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도 민족의식을 유기체적으로 통일시키고 구성원들을 하나로 고양시키면서 하나의 국민국가로 형성되어온 측면이 크다. 한국만이 아니라 여느 나라든 이러한 구성원간 의식의 통일을 경험하면서 오늘의 국가를 형성하는 동력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전 세계가 기존의 국경 개념을 지키면서도 이를 넘어서는 다문화·초연결의 사회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다. 국경은 있으되 그 너머로 이루어지는 교류의 폭이 훨씬 더 크다. 우리도 한때는 그렇게 저항했던 일본과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수백만의 사상자를 내며 전쟁까지 치렀던 북한과 평화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으며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천문학적 규모의 교역을 하고 있다.

이미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이 2020년 기준으로 220만 명이나 되고 3만3000여명의 탈북민들과 함께 살고 있다. 대중 매체에서는 다양한 피부색의 외국인들이 단골처럼 등장한다. 이 모든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한국도 완연한 초연결·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것이다.

이러한 때에 대립적 저항 의식과 희생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국민국가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 분명한 사실은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에 기반한 애국정신이라는 것이 일반인에게 좀 더 현실감 있게 와 닿지 않으면 이른바 국가유공자도 일반 국민과 무관한 특수한 신분이나 영역에 있는 사람으로 머물 공산이 크다.

국가유공자를 포함해 85만명에 이르는 보훈대상자들에 대한 존경심은 커녕 애국정신의 함양이라는 각종 정책과 행위도 '형식'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어떤 때 애국가를 진심으로 우렁차게 부르게 되는 것일까.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보훈을 둘러싼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야 할 중차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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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 원장 dtoday24@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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