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26일 열린 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 정기 주주총회에서 양사의 이사회의장직을 내려놓음으로써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1998년 외환·금융위기의 여파로 무일푼으로 대우그룹에서 나온 뒤 창업해 20여년만에 자산 5조원대 준대기업집단을 일군 서 명예회장의 일대기는 가히 입지전적(立志傳的)이다.
하지만 이날 주총에서 서 명예회장의 장남인 서진석 셀트리온 수석부사장과 차남인 서준석 셀트리온 이사가 각각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기대는 우려로 바뀌었다.
서 명예회장은 아들 형제가 이사회의장을 맡을 뿐 직접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일은 없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배주주의 입김이 센 우리나라 기업경영 실정에 비춰 볼 때 지배주주 일가가 이사회의장이 되면 경영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회의론적 시각이 적지 않다.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두 형제의 경력이나 근속연수에 비추어 볼 때 '동일인 2세'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30대 중후반인 두 사람이 '고속승진'을 한 특별한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며 "셀트리온그룹도 지금껏 여러 대기업집단에서 후진적 지배구조의 전형으로 꼽혀온 가족간 경영권 승계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문제의식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이날 전화로 주총에 참석한 서 명예회장은 "경영에 부족한 점이 생기면 소방수 역할을 하기 위해 준비하겠다"며 추후 경영복귀의 가능성도 언급했다. 왕조시대 강력한 군주가 상왕(上王)으로 물러앉는다면서도 실권을 계속 행사하려는 모습과 비슷하다.
셀트리온 주주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서 명예회장의 창업 성공 스토리에 귀 기울이게 된 것은 무수한 도전과 시련 속에 이룬 성취뿐만 아니라 과거 재벌대기업 총수들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업경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다. 서 명예회장은 이런 주주·일반국민들의 높은 기대에 부응해 더 명확한 거버넌스(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음으로써 자신의 창업 성공 스토리 마지막장을 더 훌륭히 마무리 짓기를 바란다.
이욱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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