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욱신 경제부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26일 열린 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 정기 주주총회에서 양사의 이사회의장직을 내려놓음으로써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1998년 외환·금융위기의 여파로 무일푼으로 대우그룹에서 나온 뒤 창업해 20여년만에 자산 5조원대 준대기업집단을 일군 서 명예회장의 일대기는 가히 입지전적(立志傳的)이다.

서 명예회장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겠다. 샐러리맨의 롤모델이 돼야 한다"며 수차례 2세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자연히 우리나라 재벌대기업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경영권 승계 과정의 각종 불법·편법에서 절연한 새로운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대중의 기대감도 커졌다.

하지만 이날 주총에서 서 명예회장의 장남인 서진석 셀트리온 수석부사장과 차남인 서준석 셀트리온 이사가 각각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기대는 우려로 바뀌었다.

서 명예회장은 아들 형제가 이사회의장을 맡을 뿐 직접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일은 없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배주주의 입김이 센 우리나라 기업경영 실정에 비춰 볼 때 지배주주 일가가 이사회의장이 되면 경영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회의론적 시각이 적지 않다.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두 형제의 경력이나 근속연수에 비추어 볼 때 '동일인 2세'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30대 중후반인 두 사람이 '고속승진'을 한 특별한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며 "셀트리온그룹도 지금껏 여러 대기업집단에서 후진적 지배구조의 전형으로 꼽혀온 가족간 경영권 승계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문제의식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이날 전화로 주총에 참석한 서 명예회장은 "경영에 부족한 점이 생기면 소방수 역할을 하기 위해 준비하겠다"며 추후 경영복귀의 가능성도 언급했다. 왕조시대 강력한 군주가 상왕(上王)으로 물러앉는다면서도 실권을 계속 행사하려는 모습과 비슷하다.

셀트리온 주주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서 명예회장의 창업 성공 스토리에 귀 기울이게 된 것은 무수한 도전과 시련 속에 이룬 성취뿐만 아니라 과거 재벌대기업 총수들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업경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다. 서 명예회장은 이런 주주·일반국민들의 높은 기대에 부응해 더 명확한 거버넌스(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음으로써 자신의 창업 성공 스토리 마지막장을 더 훌륭히 마무리 짓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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