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개정 특금법으로 거래소 실명계좌 개설 심사 '깐깐'
업계, "거래소 상당수 문 닫을 전망…구조조정 염두 투자 주의"

▲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시세가 급락한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고객센터에서 직원이 가상화폐 시세를 살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최근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상화폐(가상자산) 투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관련 투자 경보음도 커지고 있다. 오는 9월 말까지 개정된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 요건을 맞추고자 은행들이 현미경 심사를 하면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중 상당수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부실 가상화폐 거래소가 자연스럽게 구조조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투자자들의 피해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2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25일부터 시행된 개정 특금법과 시행령은 가상화폐 거래소들에도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여하고 반드시 은행으로부터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계좌를 받아 신고 절차를 거쳐야만 영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은행은 가상화폐 거래소로부터 실명 확인 입출금계좌 발급 신청을 받으면 해당 거래소(가상자산 사업자)의 위험도·안전성·사업모델 등에 대한 종합적 평가 결과를 토대로 실명 입출금 계좌 발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는 가상화폐 거래소의 내부 통제 시스템,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구축한 절차와 업무지침 등을 일일이 확인하고 '믿을 만하다'고 판단될 때만 실명계좌를 내주라는 취지로, 사실상 거래소의 검증 책임이 은행에 부과된 셈이다.

현재 은행권 분위기로는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실명계좌를 받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시중 은행 관계자는 "대부분 거래소들이 위험평가를 진행하기 힘들 정도로 열악한 상태"라며 "거래소들이 생각하는 심사 통과 기준과 은행이 생각하는 기준 사이 격차가 매우 큰 상태"라고 말했다.

더구나 최근 가상화폐 투자가 과열되자 정부가 뒤늦게 지난 18일 가상화폐를 이용한 자금세탁·사기 등 불법행위를 막겠다며 범정부 차원의 특별단속 방침까지 발표한 만큼 은행이 느끼는 부담과 압박은 더 커질 전망이다.

최근 사모펀드 사태에서 금융당국이 은행에 단순 판매 책임이 아니라 보상 책임까지 주문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고 발생시 위험부담을 고려해 실명계좌 심사가 더 깐깐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은행들의 이런 강경한 태도에 가상화폐 거래소들도 분주해졌다. 계속 영업하려면 6개월의 법 적용 유예기간이 끝나는 9월 말까지 실명계좌를 어떻게든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상자산과 금전의 교환 행위가 없다면 실명 계정 확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 경우 해당 거래소는 가상화폐를 원화로 바꾸는 거래 시장을 열 수 없기 때문에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가 정확히 모두 몇 개인지 통계조차 없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100여 개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현재 NH농협·신한·케이뱅크 등 은행들과 실명계좌를 트고 영업하는 거래소는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 단 4곳뿐이다. 실명계좌를 갖춘 이들 거래소 역시 안전성 등 관련 증빙 서류를 제출받아 다시 평가를 거쳐야 하는 만큼 안심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다른 거래소들은 거래액 규모와 역대 사고 미발생 등 유리한 실적을 강조하며 상대적으로 덜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되는 지방은행, 인터넷은행 등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금융업계에서는 벌써 9월말 이후 살아남을 가상화폐 거래소가 손가락으로 꼽을 수준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개정 특금법 적용 과정에서 위험성이 높은 가상화폐 거래소의 구조조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거래소 선택과 가상화폐 투자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