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실패, 곧 국가의 실패-22

▲ 사진=조광한 경기도 남양주 시장

지난번에는 영국이라는 강자에 맞선 토마스 페인의 ‘상식’과 미국 독립을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가톨릭교회의 절대 권력에 맞선 종교개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가톨릭과 기독교의 이야기지만 기득권과 독재에 저항한 내용으로 보면 종교에 관계없이 생각해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중세유럽은 가톨릭의 시대였습니다. 수백 년 동안 교회가 사회의 중심에 놓여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고, 오랜 시간 권력을 독점하면서 교회는 썩고 성직자들은 부패했습니다.

그러나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에 걸쳐 르네상스, 즉 신중심 사회에서 인간중심 사회로 서서히 변하면서교회의 엄청났던 힘도 차츰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왕들은 성직자의 임명권을 직접 행사하고 교회의 조세권에 반기를 드는 등 교황에 맞서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유독 독일은 종교 제후가 강성했기 때문에 감히 교황에 대해 반기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이런 기반으로 로마 교황은 다른 나라보다 독일에서 더 많은 돈을 거둬들였고, 독일은 '교황의 젖소'라 불릴 만큼 교황청의 착취가 심했습니다. 

독일 내 영주들과 도시의 중소 생산업자, 상인들은 돈이 로마로 흘러가는 것에 강한 반감을 가졌습니다. 농민층 또한 교회의착취에 살기가 힘들어지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교황청에 대한 증오와 불만과 원성이 점차 고조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시발점이 된 ‘면죄부 판매’가 일어납니다.

교황 레오 10세는 산피에트로 대성당 즉, 성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는 자금 마련을 위해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면죄부란 죄를 용서받는 증서입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기부금을 내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돈이 이 상자에 짤랑하고 들어가는 순간, 영혼은 지옥의 불길 속에서 튀어나오게 됩니다!”라고 사제들이 설교 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착취와 타락에 분노와 증오가 끓어올랐지만 앞장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당시 교회 권력에 맞선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다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독일의 사제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교황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조 의견서’를 비텐베르크성 교회 정문에 붙였습니다.

일종의 항의문인 ‘95개조 의견서’는 처음에는 대자보 수준이었지만 이것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게 되고 곧 유럽 전체로 확산되었습니다.

인간은 면죄부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고, 신과 인간 사이에 중간자인 교황과 사제가 없어도 신과 인간은 직접 소통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루터는 교황에게 파문을 당하고 황제가 위협하자 피신을 하게 됩니다. 피신한 그는 라틴어로만 되어있던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해 성서의 대중화와 독일어의 통일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루터교를 받아들인 제후들은 동맹을 결성해 교황파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1555년에 루터파 교회가 공인되어 구교인 가톨릭과 신교인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로 갈라졌습니다.

스위스의 사제 쯔빙글리는 루터가 의견서를 발표한 무렵에 면죄부의 폐해와 교황청의 비리를 지적하고각종 예식과 예법의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이후 1531년 가톨릭파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그의 사상은 칼뱅에 이르러 꽃을 피우게 됩니다.

1536년,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장 칼뱅은 스위스에서 ‘기독교 강요’라는 책을 발표했습니다. 루터의 의견서 약 20년 후입니다. 그는 신앙과 현세의 생활을 함께 강조하고 수도원 안에서 금욕적인 생활만 하는 대신 현실 세계와도 자유롭게 접촉할 것을 권장했습니다. 인생은 매우 즐겁고 인간관계도 소중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일상의 정치문제나 경제생활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권고했고, 신이 창조한 자연을 마음껏 누리는 것도 기독교인의 권리라고 했습니다. 절제된 생활을 하되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신의 축복이라고 강조해 근대자본주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저항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프로테스탄트는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가톨릭의 독재를 타파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고, 종교개혁은 르네상스에 이은 또 하나의 인간성 회복이었습니다.

절대 권력이자 무지막지한 강자였던 교황과 가톨릭에 맞선다는 것은 당시에는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루터, 쯔빙글리, 칼뱅 등 종교개혁가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종교와 사상의 자유는 없었거나, 아주 오랜 시간이 더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강자에게 굴하지 않고, 맞서고 저항하는 용기와 신념이 너무 절실한 것은 아닐까요?

다음에는 우리 역사로 돌아와서, 연개소문의 반란과 고구려의 멸망을 살펴보겠습니다.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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