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실패 … 곧 국가의 실패 - 26

▲ 사진=조광한 경기도 남양주 시장
동서고금의 수많은 독재자들 중에서도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고 엽기적이었던 독재자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우간다의 3·4대 대통령 이디 아민입니다.

그는 아프리카의 학살자, 검은 히틀러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아주 잔혹한 공포 통치를 했습니다.

공식 교육은 거의 받지 못한 문맹이었고, 193cm 100kg이 넘는 거구로 권투 챔피언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1967년 군 사령관이 되었지만 좌천당하자 1971년 1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가 집권한 후 지식인, 장교, 법관들이 엄청나게 사라지기 시작했는데..반대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었습니다.

3000여 명의 정치인과 군인들이 살해당했고, 전임 대통령을 지지하던 마을들은 폐허가 되었으며 주민들은 학살당했습니다.

아민이 권좌에 있던 8년간 50만 명 이상의 우간다 국민들이 희생당한 것으로 UN과 인권단체는 추정했습니다.

집권 초기 그는 이스라엘과 우호적이었는데 갑자기 자신이 무슬림이라 선언하고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미화하면서이스라엘을 적으로 규정하고 유대인들을 추방했습니다.

또한,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던 인도인들을 내쫓고 국영화하거나 우간다인에게 맡겼지만 기술과 운영능력이 부족해 대부분 폐업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며인플레이션 발생과 함께 경제는 파탄나게 됩니다.

그의 포악함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악랄했습니다.특히 직접 고안한 고문은 악명이 매우 높았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을 탱크로 뭉개버리고, 시체를 비료로 쓰거나 악어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당시 우간다의 악어들은 애써 사냥을 할 필요가 없어서 동물학자들이 경악할 정도로 게을러졌다고 합니다.

교도소의 죄수들을 못이 빽빽이 박힌 마루 위를 맨발로 걸어가게 하고, 감옥의 복도에는 물을 채우고 전기를 흘려 탈출하려는 즉시 감전사하게 만들었습니다.

살아있는 독사를 잡아 그 자리에서 회를 쳐서 외교 사절에게 권했고, 각료회의 중에 마음에 안 드는 장관은 즉석에서 뺨을 때리고 자신의 다리 밑으로 기어가도록 명령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주변국 독재 정권들의 지지로 1975년에 아프리카 통일기구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1976년에는 자신을 종신 대통령으로 선언했습니다.

정권 말기에는 존경받는 성공회 대주교까지 죽였고,국민의 분노와 불만이 고조되자 1978년 국내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탄자니아를 침공했습니다.

그러나 1년 뒤인 1979년 4월 11일, 오히려 탄자니아 군과 우간다 국민해방전선이 우간다의 수도를 점령하자 사우디아라비아로 가서 망명 신청을 하였습니다.

무슬림 성직자들은 그가 인육을 먹는 등 충실한 무슬림이 아니라며 추방시키려고 했지만, 필사적으로 식인행위를 부정했고 뚜렷한 증거가 없자 결국 사우디 국왕은 망명을 허가하였습니다.

그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우디 정부가 내준 집에서 숨죽이며 살다가2003년 8월 16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렇게 공포적인 독재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독재의 성향과 뒤틀린 인성을 가진 사람이 정권을 잡게 된다면 어떤 방식과 행각으로 나라를 망가트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음에는 ‘피의 독재’라고 불렸던 칠레의 피노체트 대통령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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