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석유선 취재팀장

이명박 정부 들어 기업인들이 가장 많이 들어야 했던 단어가 아마도 '상생경영'일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힘을 합쳐 함께 나누고 도와 말그대로 서로 잘 살자는 것인데, 어째 기업인들은 '상생'에 대해 예민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이런 행태는 특히 건설업계에서 유독 눈에 띈다.

모 중소건설사 대표는 '상생'이란 단어만 들어도 헛웃음이 나온다고 말하고, 대형건설사 임원도 "경기가 엉망인데 상생경영한 언감생심"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하도급사인 중소건설사는 주머니를 열지 않는 원도급사에 여전히 불만이 많고, 원도급사인 대형건설사는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이젠 여력이 없다고 볼멘 소리인 것이다.

왜 이렇게 양측 모두 '상생'에 불만이 많은 것일까.

이유야 간단하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곳간이 가득하지 않은 데 그 누가 마음을 넉넉하게 쓸 수 있겠는가. 더구나 (정부에서 밀어부치는 형국이니) 제 뜻이 아닌 것을 억지로 하려니 절로 앓는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대한전문건설협회(KOSCA)가 발표한 가장 최근 자료인 '8월 전문건설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건설 하도급 업체의 86%가 자금 사정이 전달에 비해 악화되거나 비슷했다고 답했다.

또 원도급사에게서 어음할인료나 지연이자를 받지 못한 사례도 49%로 전월보다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하도급사의 경기악화 체감도는 곧바로 원도급사의 기성금 지불행태에서 바로 드러난다. 그렇다고 원도급 건설사가 일부러 이런 횡포를 부린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앞서 공정거래위원장과의 면담에서 10대 건설사 사장단들은 저마다 하도급 건설사들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고 있고, 최선을 다해 상생경영을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물론 정부 당국자 앞에서 보여주기식 공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공공건설 발주 물량 감소와 자금경색이 계속되다 보니 자금을 제대로 운용하기 힘든 것은 비단 중소건설사 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 형국에 계속해서 '상생'만을 외치며 고삐를 당기는 정부에 이끌려갈 건설사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건설사들의 자발적으로 상생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하도급법을 제도적으로 탄탄하게 정비하는 것은 물론,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한 복안을 끊임없이 내놓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것만이 건설업계를 살리는 것은 물론 온전한 '상생경영'을 만들어 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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