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건설부동산팀 이영민 기자

미국엔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경제동향에 대한 분석과 정책방향에 대한 보고서를 연간 8회 발표하는 이름하여 ‘베이지북’이란 것이 있다. 한국에도 매달 기획재정부에서 내놓는 경기흐름분석과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담은 ‘그린북’이 있다.

지난 7일 기획재정부가 2월 그린북을 내놓는데 여기에 생활물가 안정과 일자리 창출로 서민생활 안정에 주력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정부가 최근의 경기상황을 진단하고 대처방안을 담았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국토해양부 산하 공기업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 이하 LH)도 이러한 정부방침에 부응하듯 최근 이지송 LH 사장은 "60세이상 실버사원 20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인층에 대한 일자리 창출의 필요성은 그동안 여러 차례 지적돼 왔고 정부 복지정책의 중요한 사업 중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고령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사업은 주무부서는 사실 국토부가 아닌 '보건복지부'이고 충분한 검토와 사전 준비가 필요한 정부복지정책의 큰 틀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LH의 실버사원 채용은 뜬금없는 발상으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사실 공공기관 부채의 절반에 가까운 재정부실문제나 시시콜콜 터져 나오는 직무관련 비리 등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LH 조직에 대한 국민적 실망은 한계점에 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때, 서민주거안정대책 핵심사업인 보금자리주택공급사업의 시행자 LH가 본연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현 정부의 갈피를 못 잡는 정책발표에 해바라기마냥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실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대학생 전세임대지원사업'도 마찬가지다.

대학생들의 주거안정 대책에 대한 정부방침에 급조된 전세임대주택 지원대책을, 그것도 학생들이 학기를 시작한 후에 내놓는가하면 올해도 정부가 운을 떼자마자 1만호를 공급하겠다며 대대적 홍보를 벌였지만 결과는 실계약률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민주거안정사업의 핵심인 보금자리주택공급사업은 어떨까. 부동산 가격하락에 이바지했다는 동정론(?)을 제외하면 이 역시도 문제점 투성이다.

시장예측이 빗나갔음은 물론이고 보상을 둘러싼 갖가지 잡음에 사업지구지정을 취소해 달라는 지역주민들의 집단민원과 소송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한 마디로 개점휴업상태나 마찬가지다.

잇따른 LH의 정체성을 의심케하는 선심성 홍보사업에 직원들조차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올 정도니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제 올해 말이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동안의 주택정책에 대한 분석과 평가 그리고 보완된 서민주거안정대책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그 정책을 시행하는 LH는 새로운 조직으로 개편되거나 전혀 다른 인물들로 대체될 수는 없다.

한국토지주택공사법에는 “국민주거생활의 향상 및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도모해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설립목적을 명시하고 있다.

통합 LH 출범 3년째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LH가 ‘서민주거안정’이라는 국민적 과제를 현 정부하에서도 또한 다음정부에서도 일관되게 추진하는 공사 본연의 사명감을 가져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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