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건설부장관 너무 설친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소리를 주장관은 여러 곳에서 들었다고 한다. 여기서의 ‘여러 곳’이란 우선 야당, 다음이 여당, 그 밖에 같은 행정부처, 언론, 학계, 경제단체 등을 뜻한다. 그는 당시를 회고한다.

"주원이라는 자, 너무 설쳐댄다. 혼자서 날뛴다 하는 얘기였어요. 그러니 갈아치워야 된다고 고위층에 바람을 넣는 사람도 간혹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행정부 안에서도 마찰은 없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봅시다. 우선 도로정비촉진법의 개정이다, 석유류세법이다 해서 건설재원을 확보하다보니 경제기획원이나 재무부에서는 재정경직이라고 못마땅해 합니다.

FAO(유엔 식량농업기구)에서 무상원조양곡을 들여다가 고속도로 건설 인건비의 일부를 충당하려 하자 농림부나 보사부는 소관 침범이라고 불만을 표시해 옵니다"

예산 당국과 절충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 있어 부총리와 그 문제를 타결지으려 할 경우에도 주장관은 곧장 경제기획원으로 부총리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청와대로 달려가서 고위층의 양해부터 얻어놓는 우회전략을 가끔 시도했었다.

장관의 브리핑에 대통령이 납득하여 "그렇게 하라"는 승낙이 떨어지면 주장관은 미리 준비해간 메모랜덤을 펼쳐 보이고, "승락해 주신다면 각하, 여기다 서명을 해 주십시오"하고 전격적으로 사인을 요구한다.

예산 당국과 미리절충하고 부총리를 거쳐서 청와대로 최종재가를 얻으러 가는 순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양해부터 미리 받아내어 그 증표(?)를 호주머니에 넣고(만약 일이 끝내 타결되지 않을 경우에는 이 증표가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리라) 유유히 기획원으로 행차하는 것이다.

기획원에 행사해서도 부총리실로 직행하는 것이 또한 아니다. 담당과가 어디냐고 물어 담당과장을 먼전 찾아간다. 국무위원의 내방이므로 사무실안의 전 직원이 기립하여 그를 맞이하게 마련인데, 주장과 나름으로는 이런 방법도 일종의 기합 전술이었는지 모른다. 동급자(건설부의)가 찾아와야 할 자리에 장관이 직접 나타난 것이고 보면 기획원측으로서는 좀 기가 질리는 노릇일밖에.

"장관님, 부총리실로 가셔서 얘기를 하시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당신(과장)이 부총리보다 얘기하기가 나아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일이 오히려 순탄하게 풀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고 당시의 장관 수행비서 박세웅씨(현재 한국연도주식회사 상무)가 옆에서 거든다.

"그때의 건설부는 고독했었지. 장관 못하겠습니다고 각하에게 털어 놓은 적도 있어요"하고 주장관은 말한다.

건설부가 추진하는 사업(그것은 국가최대사업이었다. 초국가사업이라는 말도 있었다)을 겉으로는 적극 밀어 주는 척하면서도 뒤로는 제각기 몸을 사리는 것이 타부처의 실상이었다고 한다.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져야 했던 배경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건설부장관은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청와대로 달려가서 대통령에게 매달리곤 했다.

그가 믿을 곳은 박대통령밖에 없었다.

고독한 장관이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것이 당시의 주원장관의 입장이었다.
다행히 대통령에게 매달려서 안 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적어도 ‘고속도로’에 관한 한 그러했었다.

다만 대통령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서도 고전을 감수해야 되는 사각의 장이 몇군데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국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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