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건설경제팀 선태규 기자

‘온기’를 잃은 듯한 해를 등에 이고,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20층 회색빛 건물이 아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시선은 마치 내성적이고 심약해 보이는 한 아이를 업신여겨 보며 못살게 굴려는 못된 악동의 괴롭힘을 담고 있는 듯했다.

그 그늘에 가려진 5층 건물은 그 따가운 시선을 애써 피하려는 듯 어색하게 딴청을 부리며, 창백한 얼굴을 푹 숙인 채 옷자락만 만지작거리는 듯했다.

그 둘은 한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와 두 덩어리가 된 아메바같기도 했다.

큰 덩어리는 2만개의 세포로 구성돼 있고, 작은 덩어리는 300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다.
큰 놈이 작은 놈을 집어삼키려든다. 아메바는 아닌 거 같다.

한국전력이 전력거래소의 핵심 기능인 ‘계통 운영’ 기능을 흡수하려 든다.

그게 빠지면 거래소는 신장이 떨어져나간 사람처럼 비실거리며 주저앉을 수 밖에 없다. 시장기능 다른 말로 하면 일반회사의 경리 기능만 남게 된다. 300개의 세포 중 200개가 몸체에서 떨어져 나간다. 존재 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전력시장의 미래를 위해 ‘중립’을 지켰던 것이, 한전이 볼 때는 견제로 느껴졌고, 200개의 세포는 2만개의 세포 속에서 주홍글씨의 여자 주인공처럼 ‘배신자’로 낙인찍힌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몸의 상체가 발전사라면, 하체는 한전 즉 판매사고, 혈관은 송배전망이며, 뇌는 계통이랄 수 있다. 뇌는 각 부분 부분을 조화롭게 결합하고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한전이 발전사 지분 100%를 갖고 있다면 상체와 하체는 이미 한 몸이고, 몸뚱아리가 뇌를 지배한다면 그 자체가 기형이다.

생체리듬은 깨질 수 밖에 없고, 기형적으로 자랄 수 밖에 없다.

몸뚱아리가 아무리 부인한다해도, 뇌가 제 기능을 발휘하며 구축해 온 전력시장은 망가질 수 밖에 없다. 큰 덩치를 더 키우려 했던 욕심이 빚은 참극이다.

한전은 지금 한전노조를 전면에 내세워 계통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지경부 산하기관으로써 지경부와 다른 입장을 표명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거래소는 가면 쓴 한전과 ‘공정한 전력시장의 운영 및 발전’을 위해 맞서고 있다.

기원전 480년,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300명의 스파르타 용사들이 페르시아 100만 대군과 맞서는 전투를 연상케 하는 형국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싸우는 100만 대군이, 나라와 가족의 미래를 위해 전장에 나선 300명의 용사를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한전은 옛 생각에 사로잡혀 작은 거래소 체구만 보지 말고, 그가 갖고 있는 ‘이상’과 그 뒤에서 그를 지지하는 5000만의 ‘국민 대군’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갖기를 바란다.

그게 덩칫값에 걸맞는 행동이고, 진정으로 몸집을 키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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