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을 둘러싼 뼈있는 농담들, 그 실체 들여다보니…

한국전력과 그 인근에서 ‘이름’과 관련한 뼈있는 얘깃거리들이 활개치고 있다.

딱딱 씹어대는 껌이나 아삭아삭 깨물어먹는 과자처럼 쉬는 시간 간식거리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끼리끼리 모여 시간을 죽이고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이만한 게 없어 보인다. 한전과 자회사간의 요즘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는 내부(?) 평가다.

▲ 한국전력 자회사와 전력거래소 이름이 삭제된 ‘한국전력’ 안내판. (사진=김윤배 기자)

◇한전은 하나, Kepco는 둘

한전은 하나지만, 한전의 약자인 Kepco는 2개다. 일본 간사이 지방의 간사이전력(Kansai Electric Power Company)도 Kepco라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전의 Kepco는 Korea Electric Power Corporation의 머릿글자를 딴 것이다.

한국의 Kepco가 1982년 설립됐고, 간사이전력은 1951년 설립됐으니 간사이전력이 이 명칭을 먼저 썼다고 볼 수 있다.

Kepco가 2개라는 얘기는 주로 발전사 직원들의 담소자리에서 뚝딱뚝딱 튀어나온다.

발전사들은 뼈빠지게 일하고, 생색은 한전이 내고 있는 실태를 꼬집었다고 볼 수 있다. 한전 고위관계자도 한전의 ‘브랜드네임’을 강조했다. 해외 수주현장에서는 한전만이 통용될 수 있다고 자부했다. “수주를 해야 일도 하는 것이지”. 그가 남긴 멘트다.

이런 한전의 자부심을 한낮 우스갯거리로 만들어버리는 농담이 바로 ‘Kepco가 2개’라는 얘기다.

한전이 발전사들이 일한 보람인 ‘당기순이익 70%’를 털어 갔고, 그것도 모자라 보정계수를 조정해 사전에 발전사의 순익을 가져가려는, 발전사 입장에서 볼 땐 통탄할만한 현실을 그저 참고 있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농담 한마디가 발전사들의 속병 치료에 특효를 보이고 있다.

 

한전과 자회사 관계자들은 “농담처럼 오가는 말들이 뼈가 있고 실감나게 느껴져 씁쓸하다”고 말했다.

◇‘독야청청’ 한국전력, 삭제된 자회사

한전 서문 앞에 큼지막한 안내판이 비석처럼 서 있었다. 거기에는 한전부터 전력거래소, 발전사 등의 이름이 흰색 바탕 위에 나란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달랑 ‘한국전력’만 남았다. 나머지 명칭은 소위 말해 삭제됐다.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치자면,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쓰레기통을 비웠는지는 알 수 없다.

한전에는 아직도 한수원, 중부발전, 남동발전, 동서발전, 전력거래소 등이 남아서 둥지를 틀고 있다. 물론 발전사들이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기도 전에 “갔다”고 외치고 있는 한전을 보면서, 자회사들은 ‘제식구 챙기기’의 극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혀를 끌끌차고 있다. 당기순이익에 이어 이름까지 뺏겼으니, 어찌보면 괘씸하다.

하지만 비싼 임대료,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사무실의 ‘자연환경’, 한 건물에서 부비며 느꼈던 이질감 등에서 벗어나 ‘차라리 잘됐고 후련하다’는 게 대체적인 자회사들의 반응이다. “주차문제로 고민된다”, “테니스를 못치게 돼 아쉽다”는 식의 ‘표정관리형’도 있다. (한전 내에 테니스장이 있다.)

전력산업계의 앞날을 염려하는 ‘걱정근심형’도 눈에 띈다. 이 고민은 한전과의 ‘이질감’에서 비롯된다.

발전사 직원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한전 소속이었다. 일터가 바뀌었지만, 처음 맺었던 인간관계는 여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전은 한전대로, 발전사는 발전사대로 직원들을 새로 뽑아 일을 시키고 있다.

한전과 발전사간에 보이지 않던 유대관계의 끈이 삭고 있다. 삭아서 끊어지면, 한전과 발전사간의 감정은 ‘이질감’을 넘어 ‘적대감’으로 변질돼 대립각이 세워질 수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전력산업계에도 타격을 줄 것이란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일시정지’된 전력구조개편에 시동을 걸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필요가 있는 게 이들이 꼬집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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