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H의 138개 전국 사업 중 유일하게 기사회생

어버이날이던 지난 8일.
이인재 파주시장을 비롯한 파주시민에게는 또 다른 의미 있는 날이었다. 이날 파주시청에서는 ‘운정3지구 택지개발사업 보상협의회’가 열렸다. 지난달 국토해양부가 운정3지구에 대한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택지개발지구 실시계획을 최종 승인한 이후 처음 열리는 보상협의회였다. 수년 동안 중단됐던 신도시 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재개되고 주민보상을 받기 위한 천 단추를 끼우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정부의 신도시 개발계획 발표만 믿고 미리 대출을 받아 살 궁리를 마련했던 주민들은 수년 간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 못해 파산위기에 놓였었다. 늦게나마 LH가 토지 보상계획을 착수하고 오는 8월까지 보상에 착수하기로 한 것. 시는 LH의 전국 138개 신규사업장 중 유일하게 기사회생된 사업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

▶성난 운정3지구 주민들, “정부 믿다 빚더미”
지난 2010년 11월 16일 국회의사당 앞. 차가운 날씨 속에 파주 운정3지구 주민 500여 명이 관광버스를 나눠 타고 속속 집결했다. 운정3지구 신도시 개발과 관련, 토지보상이 계속 늦어져 주민들의 피해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선 6월말에는 파주 시민회관과 LH 분당본사에서 1천여 명의 주민이 참석한 ‘보상촉구 범시민 결의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같은 해 7월에도 중앙정부청사 앞에서 주민 300여 명이 정부의 손바닥 뒤집기식 정책을 비난하며 집회를 가졌다.
운정3지구는 지난 2008년 12월 정부로부터 개발계획 승인까지 받았지만 이후 사업시행자인 LH가 경영난을 겪으며 사업추진을 보류해 왔다. 피해는 고스란히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넘어갔다. 2천여 명의 지역 주민들이 총 1조2천억 원의 빚을 떠안았다. 정부의 신도시 개발 발표만 믿고 대출을 받아 공장을 이전하고 대토를 사고 가게를 옮겼지만 보상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에 LH에서 해당지구의 사업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주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불가능을 희망으로 바꾼 운정3지구 개발사업
대토 등을 위해 구입한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경매 처분된 부동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파주발전시민연합회에 따르면 2007년 132건이던 경매건수가 2009년과 2010년에는 각각 406건과 806건으로 매년 두 배 가량 증가세를 보였다. 파주시도 위기감을 느끼며 자체 구제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시는 우선 토지주 108명에게 9월분 재산세 7억8천300만 원을 다음해 3월까지 납부하도록 기한을 연장했다. 관련기관들에 대한 본격적인 압박도 병행했다. 주민 보상과 개발을 촉구하는 서한문과 청원서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70여 명의 국회의원과 이지송 LH사장에게 전달됐다. 국가를 믿고 따른 주민들의 피해를 국가가 나서 살펴야 한다는 게 파주시의 명분이었다. 이와 함께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던 일을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중단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란 주장도 내세웠다.
2010년 8월 이인재 시장은 지역구 국회의원 황진하 의원과 함께 청와대를 찾아 임태희 대통령 실장과 최중경 경제수석, 정진석 정무수석 등에게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LH에 대한 압박의 수위도 높였다. 시는 LH·파주시장·황진하 의원·주민대책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4자실무협의체를 구성할 것도 LH에 수차례 촉구했다. 결국 지난해 3월 12일 첫 4자협의체 회의가 열려 실시설계 용역 재개와 주민들에 대한 금융 구제안 마련에 합의했다.

▶금융권과 관련기관 설득으로 주민고통 해소에 집중
가장 급한 불은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주민들의 이자 부담이었다. 파주시는 이자 부담으로 고통 받는 주민들의 구제책부터 마련해 나갔다. 이를 위해 우선 농협중앙회 파주지부와 지역 농협조합장들에게 주민들에 대한 추가대출·금리인하·대출연장·이자유예 등을 요청해 약속을 받아냈다. 이와 함께 기업·우리·신한 등 제1·2금융권에도 금융지원 협조를 요청하고 이들과의 수차례 면담도 추진했다. 막막하기만 했던 사업재개 여부가 금융구제책 마련으로 조금씩 가닥을 잡아갔다.
이 시기 신도시 개발사업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LH는 지난해 7월 중단했던 지장물 조사를 재개하는 등 본격적인 보상작업에 착수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택지개발지구 개발계획 변경 및 실시계획 승인 신청서가 국토해양부에 제출됐다. 4자실무협의체는 국토해양부와 경기도를 포함시키며 6자협의체로 발전했다. 이해관계자들을 협의체에 모두 포함시켜 조기보상과 함께 사업성 개선을 위한 조치였다. 자칫 반쪽자리 도시로 전락할 뻔 했던 신도시 개발 사업이 조금씩 제 위치를 찾아갔다.
운정3지구는 면적 7.0㎢에 인구 9만5천여 명을 수용할 예정이다.
공사가 완료되면 운정1·2신도시 및 교하신도시와 연계돼 총 18.7㎢의 대규모 신도시가 탄생된다. 이는 15.7㎢ 규모인 일산 신도시보다 큰 규모이다. LH는 조속한 시일 내에 토지보상 계획을 공고하고 감정평가 등의 절차를 거쳐 8월 안에 보상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파주시도 토지보상과 개발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태세다. 이인재 파주시장은 “장기간 표류됐던 운정3지구 보상계획이 공식화돼 해당지역 주민들의 불안도 차츰 해소될 것”이라며 “앞으로 차질 없이 주민들에 대한 보상이 진행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들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