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이 이윤 독점하는 동안 고전하는 中企

▲ 27일 오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대, 중소기업 동반성장 컨퍼런스'에 참석한(왼쪽부터)곽수근 한국경영학회장, 최병석 삼성전자 부사장,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정병철 한국경제연구원 부회장,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이장우 경북대 교수, 정영태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4·11총선에 이어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가 연일 가열되고 있다. 덩달아 국민들의 대기업 반감 정서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선거 때면 으레 나타났던 현상이기는 하지만 올해는 특히 자본주의제도에 대한 반감과 회의가 확산되면서 과거와 강도가 다른 대기업 옥죄기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감정만을 앞세운 대기업 때리기는 국가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대기업들도 반성할 부분은 많다. 그동안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익만을 추구하고 동네 상점들까지 위협하는 문어발식 확장경영, 오너들의 불법과 비리, 비윤리적인 경영 등으로 공분을 샀기 때문이다.

대기업 스스로 자성하고, 이를 고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이다.

대기업들의 지나친 이기주의, 부정부패, 확장경영 등을 단속하고 이를 규제하는 것은 마땅히 강력하게 추진돼야 하지만 지나치게 표만 의식해 대기업 자체를 말살하려는 식으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공멸의 지름길이다.

◇ 30대 재벌 상장계열사 매출 67% 독점

대기업을 논할 때 흔히 언급되는 것이 경제력 집중 문제다. 중소기업이 느끼는 경제활동에 따른 이윤의 쏠림 현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로인한 폐해 역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MB정부 출범이후 재벌규제 정책으로 대표되는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폐지와 금산분리 완화로 폐해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기업이 이윤을 많이 가져갈수록 그것이 구성원들에게 분배되어 다시 사회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기 때문에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문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윤이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의 이윤 독식은 사회적 양극화를 부르고 산업경제전반의 불균형이 심화되어 한국경제의 중장기 발전을 어둡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3월 발표한 2011년 4월 자산기준 상위 30대 재벌 상장계열사의 최근 3년간(2007~2010) 총자산, 매출액, 당기순이익 추이를 보면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심각한 수준으로 조사됐다.

30대 재벌 상장계열사가 전체 상장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0년에만 총자산 55%, 매출액 67%로 30대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됐다. 당기순이익의 경우 2010년 75%를 차지해 국내 상장기업들 중 30대 재벌 상장계열사가 대부분의 이익을 거둬간 것으로 나타났다.

올 초 문제가 됐던 재벌의 골목상권 진출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도소매업의 경우 30대 재벌의 상장 도소매업체들이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이 전체 상장도소매업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총자산의 경우 81%, 매출액은 86%나 된다. 당기순이익의 경우 111%에 달해 전체 상장도소매업체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는 중소 상장도소매업체들이 대부분 적자를 기록하는 사이 30대 재벌 상장도소매업체들은 흑자를 기록하면서 꾸준히 순이익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30대 재벌 상장도소매업체 숫자는 2007년 19개사에서 2010년 25개사로 6개사(32%)가 증가했다.

도소매업의 경우 특성상 큰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 않고 중소기업과 서민상권이 많아서 자본력과 마케팅 능력만 있으면 쉽게 이윤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재벌들이 진출을 늘리고 있다.

눈여겨 볼 것은 상위 15대 재벌의 전체 계열사 수가 2007년 4월 472개사에서 2011년 4월 778개사로 4년간 306개사(64.8%)나 급증했고, 이중 중소 서민상권이 많은 비제조 및 서비스업 진출이 압도적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이들 업체들은 '유통·서비스분야 적합업종 지정'에 매우 적극적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10월 조사해 발표한 '유통·서비스 분야 중소기업 동반성장 인식 조사'를 보면 78.1%가 '유통·서비스 분야 적합업종 지정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63.8%는 '즉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기업이 이들 분야에 진출한 이후 이윤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 중 38.4%는 매출액이 줄었고, 대기업 진출에 대한 특별한 대응방안이 없다는 곳도 68.0%나 됐다.

이는 뒤집어 보면 갈수록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세 탓에 중소기업과 서민층이 겪어야 할 상대적 박탈감은 앞으로 더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 2009년 출총제의 실질적 폐지 등 MB정부의 규제완화를 이용해 대기업들이 몸집을 불리는 사이 중소기업과 서민상권은 동력을 잃고 무너지기 일보직전에 놓인 상황인 것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말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을 비판하는 일이 벌어지며 정치권의 재벌 개혁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재벌 개혁에 손 뻗은 정치권

재벌의 일방적 독주에 정치권과 여론이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재벌이 이를 촉발시킨 측면이 크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한다는 볼멘소리도 들리지만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했다.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권도 재벌의 일방통행식 경영에 메스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대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다양한 선거 공약 등을 내놓고 있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지난 17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재벌의 경제력집중을 막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경제통인 이 최고위원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부분이 경제민주화의 한 축이다. 재벌이 동네 피자집과 빵집, 커피숍을 몰아내는데 초국적인 자금이나 인재풀, 유통망, 네트워크 등 엄청난 힘을 쓰지 말라는 것도 경제민주화의 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이어 "부당거래나 내부 거래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고 징벌적인 제도를 도입하거나 직접 소송제를 도입해 (재벌이) 감히 그런 일을 생각도 못하도록 하는 여러 가지 강력한 조치들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력 완화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도 포함돼 있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했다.

지난 2일 경제개혁연구소 역시 '재벌규제 강화 법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완화를 위해서는) 출총제를 대신해 의무공개매수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순환출자 금지, 금융보험회사의 의결권을 금지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지난달 4·11 총선 승리 기자회견을 하며 '불법사찰방지법 제정, 민생문제 해결, 공약실천' 등을 주요하게 언급했다. 연말 대선까지 현 정부와 선 긋기를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4대그룹 한 임원은 "대기업에 대한 여당의 평가가 그리 좋지 않고, 박근혜 위원장이 대선 주자로 나서게 될 경우 연말 대선은 물론 그 이후까지 지금보다 더한 혹독한 추위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독재도 나쁘지만 독식은 더 나빠

확연히 드러난 사실은 대기업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앞으로 자리보전하기가 만만찮을 것이란 점이다. 이는 소나기만 피하면 되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정치권과 여론이 바뀌고 사회가 경제 민주화를 부르짖는 상황이 갈수록 고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제에 이런 문제를 늘 안고 살 것이 아니라 경제민주화에 귀를 열어두고 마음 한편도 내 줄 각오를 해야 한다. 그것만이 대기업이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서 정권과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취임 초기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정책)를 주창했던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17일 '2012 중소기업인 대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제도를 만들어도 빠져 나갈 수 있다"며 "대기업 문화가 바뀌어야 상생이 가능해 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중소기업이 잘 돼야 대기업도 잘되고 대기업이 잘 되면 중소기업도 잘 된다는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즉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할 수 없는 자금과 인력, 네트워크 등을 앞세워 자신의 배만 불릴게 아니라 대기업 스스로 이익을 나누려 하는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함께 농사를 지었으면 산물(産物)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뜻이다.

◇"상생해도 화살이 날아오니 참…"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인식은 대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일들이 아니다보니 뭇매를 맞기 일쑤다.

지난 10일 동반성장위원회가 발표한 동반성장지수가 대표적이다. 모두 56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지난해 동반지수를 평가한 결과 6개사 우수, 20개사가 양호, 23개사가 보통, 7개사가 개선 등급을 받았다.

이중 개선 등급은 동부건설, 한진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홈플러스, 효성, LG유플러스, STX조선해양 7개 기업이다. 사실상 꼴찌를 한 것.

오죽하면 유장희 위원장이 "개선 등급을 받은 기업일지라도 아직 평가에 참여치 않은 다른 기업에 비해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가 강한 기업"이라며 폄하를 경계했을 정도다.

당장 전경련은 "결과적으로 줄 세우기에 그친 것이다. 낮은 등급의 기업이라 할지라도 동반성장 노력이 미흡하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균형감각을 잃었다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30대 대기업 그룹은 올해 작년보다 12.1% 늘어난 1조7213억원을 중소 협력사에 지원하고 중소기업들의 자립 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해 각종 교육 및 기술 프로그램을 벌이고 있다.

업종별로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고 해외 동반 진출을 통해 협력사를 글로벌 강소 기업으로 키우는 일도 최근 부쩍 늘어난 활동이다. 대기업들의 동반성장 활동이 단순한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동반성장에 대한 중소기업의 체감도가 아직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말 중소기업중앙회가 1년간 동반성장 성과를 점검하기 위해 협력업체 500곳을 대상으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에 대한 중소기업 체감도 조사'를 한 결과 현장의 체감 정도에 대해 절반 이상인 60.4%가 '체감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대기업 역시 59.8%가 '체감하지 못한다'고 응답해 현장의 체감도는 매우 낮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44.0%가 동반성장 노력에 대해 '희망적'이라고 응답해 긍정적 기대감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유현 중기중앙회 정책개발본부장은 "중소기업 현장의 체감도가 낮지만 동반성장 관련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고 대기업 총수들의 인식도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동반성장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4대그룹 한 관계자는 "경제력이 집중되는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이익을 나누고 함께 커 가야 한다는 명제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그러나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나쁘다고 비난의 화살을 쏴 대고 몰아치는 것은 옳지 않다. 물이 깊어야 큰 고기와 작은 고기가 같이 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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