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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첫 충청권 국회의장 강창희 후보
  • 손주영 기자
  • 승인 2012.06.0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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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강창희(대전 중구.6선)의원을 뽑았다. 새누리당은 1일 의원총회를 열어 총 136표 가운데 88표를 얻어 48표를 얻은 장의화의원을 제치고 강창희의원을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했다.

강 의장 후보는 “정치인으로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며 국회의장으로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적 가치를 지키겠다”고 선출 소감을 밝혔다.

충청권 출신으로 처음 국회의장을 하게 된 그는 “여당에는 한 번 듣고, 야당에는 두 번 듣고 국민에게는 세 번들어 각계의 지혜를 모아가겠다. 여러 의원들의 뜻을 받들어 훗날 19대 국회에 강창희 의장이 있어서 좋았다는 평가를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회의장에 취임하게 되면 관례에 따라 탈당해야 한다.

강 의원은 육사 25기 출신으로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창당한 민정당에 참여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육사시절 축구부 주장을 맡았던 그는 축구를 좋아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꼈다고 알려졌다. 그를 추천한 사람은 황진하 의원으로 당시 육군 소장으로 주민 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했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다.

후일 강의장은 황진하 의원을 국회의원으로 추천해 서로 빚을 갚은 셈이다. 그는 육군 중령으로 예편된 뒤 민정당에 참여해 민정당 조직국장을 맡았다. 1983년 전국구(지금의 비례대표) 예비후보 승계를 통해 37세에 첫 금배지를 달았다. 85년 총선에서 대전 중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88년 총선에서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돌풍에 밀려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 뒤 3당 합당으로 지역구를 내놓게 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3선 고지를 밟았다.

95년 DJP 공동정부가 출발하면서 초대 과학기술부장관으로 입각했고 뒤이어 자민련 사무총장 원내총무 등의 핵심 당직을 두루 거치며 한때 포스트 JP로 떠오르기까지 했다. 99년 7월 JP가 내각제 개헌을 포기하자 당시 김용환 수석부총리와 함께 JP노선에 정면으로 반발하면서 탈당까지 했다. 그는 3번 낙선하고 다시 당선된 오뚝이 신화를 이룩했다.

박근혜 전 대표와의 인연은 한나라당 시절인 2004년에 맺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 당시 박근혜 전 대표가 당대표 출마를 망설이자 강 의원은 “이렇게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아버님 같으면 어떻게 판단하셨겠느냐 나라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출마를 권유했다. 이 같은 두 사람의 인연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위하는데 의견을 일치해 향후 차기 정권창출까지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새 국회상 확립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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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영 기자 assembly50@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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