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남북공동성명이 4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남북관계를 생각해본다. 1972년 7월4일 당시 남한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서로 정부의 뜻을 받들어’ 7.4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자주적 평화적 민족대단결로 통일을 이룬다는 ‘통일 3원칙’을 처음을 확정하고 있다. 남북 간의 중상 비방, 무력도발 중지, 다방면적 교류, 적십자 회담 성사, 서울-평양 직통전화 가설,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등 군사적 대치국면에서 좀체 기대하기 어려운 합의들을 담아냈다.

합의도출 과정도 극적이었다. “실은 제가 지난 5월 박정희 대통령의 뜻으로 평양에 갔다 왔습니다” 1972년 7월4일 오전 10시 서울 이문동 중앙정보부 강당에 선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화두를 떼자 기자회견장은 흥분에 휩싸였다.

그는 이어 공동성명을 읽어 내려갔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1972년 5월2일부터 5월5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회담을 진행했으며 김영주 부장을 대신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1972년 5월29일부터 6월1일까지 서울을 방문해 이후락 부장과 회담을 진행했다. 기자회견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6.25전쟁 휴전이 20년도 되지 않았고 청와대를 노린 특수부대가 1.21사태를 일으킨 지 5년도 안된 시점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북 정보를 총괄하는 중앙정보부장이 북한으로 건너가 합의서까지 만들었다니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을 두 차례 만났고 북한 박성철 부부도 박 대통령을 한번 만났다는 내용이었다.

7.4공동성명의 배경에 대해 여러 해석들이 있다. 미.중 수교로 대표되는 동서긴장 완화에 구색을 맞추려는 분석도 있고, 국제 분쟁 변화 속에 남북이 살길을 찾으려 했다는 의미부여도 있다.

이 성명이 나온 지 반년도 안 돼 10월 유신을 선포했고 ‘북한은 주체사상을 지도원칙으로 한다’는 구절을 담은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단행하면서 다시 남북권력자들이 권력체제 강화를 위해 일시적으로 야합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7.4공동성명 이후 남북 간 교류와 접촉이 크게 늘었고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나 2000년 6.5공동선언 등이 내용면에서 7.4공동성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남북관계의 물고를 다시 터야할 시점에 와 있다. 이명박 정권은 그동안 남북관계에서 획기적인 일을 하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걸어서 판문점을 거쳐 평양에가 김정은 제1서기와 만나 담판할 용기와 의지가 있는지 남북관계를 풀 획기적인 제2의 7.4공동 성명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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