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두 백산 지청천 장군 기념사업회 회장

 

8.15광복절이 다가오면서 떠오르는 것은 독립운동을 하던 백산(白山) 지청천(池靑天)장군이 부르던 노래의 가사다.
“광야를 외치며 달리는 사나이 오늘은 북간도 내일은 몽고 땅, 흐르고 또 흘러 부평초 같은 몸, 고향땅 떠난지 그 몇 해 어떤가, 석양하늘 등에 지고 달려가는 독립군아 남아일생 가는 길은 미련이 없어라”
백산은 1920년 신흥무관학교 생도 300명을 인솔하고 북만주로 이동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그가 작사한 이 노래는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백산 지청천 장군 기념사업회 이강두 회장은 “백산 지청천 장군은 항일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은 민족의 영웅이며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정신적 사료로 삼아야 할 스승이며 지주이다” 라면서 “일제 36년의 압제에서 벗어나 조국이 광복된지 반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장군에 대한 정부차원의 추모헌사와 예우에 따른 마땅한 배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은 실로 유감이라 하겠다”라고 밝혔다.

이강두 회장과 일문 일답

- 기념사업회를 언제 설립했는가

▲ 2012년 3월 21에 양천구 목동에 있는 양천문화회관에서 기념사업회를 창립하고 500여 회원 평균 연령이 50대 초반으로 조직된 집행부를 구성했다.

- 앞으로 기념사업계획은 어떤 것들인가

▲ 무엇보다 성장하는 초중고생들에게 백산 지청천 장군의 생애와 업적을 알려 독립운동의 정신을 선양하는데 힘쓰겠다. 이에 따라 초중고생들의 교과서에 백산의 살아온 길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사업계획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지청천장군의 독립투쟁에 대한 역사 발굴사업이며 둘째는 청소년들과 모든 학생들에게 대한 독립역사 교육사업이다, 셋째는 항일애국지사 사업회와 대내외 기관과 협력 및 유대강화를 위한 사업이다.

- 백산은 어떤 사람인가

▲ 그는 경성인이다. 25세 일본 육군사관학교 보병과를 졸업, 일본군에서 복무했다. 대위의 신분으로 청도의 역 청도전투에 참가했으며, 후에 군대를 나와 봉천성 유하현에 이르러 한인이 설립한 신흥군사학교 교직원으로 일했다.
34세 고려혁명군 사관학교 교장에 임명되었으며 정의부 집행위원에 임명되었으며 군사부장 겸 조선의용군 사령을 겸하였다. 군사를 거느리고 압록강 연안 각지에서 전투하였으며 9.18후 한국독립군사령으로 임명되었다. 동북의 항일군 연합하여 공동작전을 벌였으며 길림성 왕정현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면서 무덤을 도굴하려는 일본군을 전멸시켰다.
이를 연도별로 구분하면 1920년대 중반에는 정의부 중앙집행위원, 군사부장의 총군사령에, 1930년대 전반기에는 한국 독립군 사령관, 조선 민족 혁명당 군사부장, 1940년대에는 임시정부 군무부장, 한국 광복군 총사령, 독립당 중앙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20여년에 걸쳐 중국 동북부와 관내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전쟁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다.

- 지청천 장군의 대전자령 전투는 유명하다고 한다. 그 내용은

▲ 대전자령<大甸子嶺> 전투는 대표적인 것이다. 1933년 6월 28일 한·중 연합군 전부대는 노송령을 거쳐 진출하였는데 이때 대전자에 주둔하고 있는 일군 연대는 한중 연합부대를 공격하려고 7월 1일 저녁에 대전자에 도착했다.
일본군대는 복병을 전혀 몰랐다.
일본군이 대전자령을 반쯤 넘어 행렬의 끝이 산중턱에 이르렀을 때 한, 중연합군은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4시간 내에 전멸했다. 이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은 군복 3,000여벌, 대포, 박격포 10문 감요 300장, 소총 1500정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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