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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6일, 작년 9·15정전 상황까지 갔었다”한전 서울본부 수요관리팀장 통해 상황 재구성..."
수요관리 없었다면 예비력 14만kW까지 떨어졌을 것"
  • 선태규 기자
  • 승인 2012.09.0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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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학순 한전 서울지역본부 수요관리팀장이 아침 출근 뒤 iSMART(전력소비 컨설팅 시스템)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김윤배 기자 99sajing@)

등줄기에 땀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머릿 속부터 이마까지 땀이 송골송골 맺히더니 뚝뚝 떨어져 안경알을 타고 흘렀다. 박 팀장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친 뒤, 안경을 손 볼 겨를도 없이 상황실로 향했다.

“10:17, 한국전력 비상수급대책본부, 수급경보 ‘관심’ 발령, 조명등 30% 소등, 냉방기 가동 중지”

“10:17, 본부, 예비력 400만 이하 저하, 기관별 조치 요망”

핸드폰 메시지를 서둘러 재확인한 그는 비상수급상황실 구성, ‘백색비상’ 발령, 변압기 탭(TAP) 2.5% 조정, 무인변전소 전담직원 배치, 유관기관 절전안내, 유선방송 시행, 직접부하제어 시행준비 안내 등의 조치들이 내려진 가운데 수요팀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직원들을 현장에 서둘러 내보내 3000kW 이상 계약고객을 설득토록 했고, 1000~3000kW 계약고객에 대해서는 내근직원들과 고객센터로 하여금 전화를 걸어 전력 사용량 조정에 동참하도록 재촉했다.

예비력이 400만kW 미만으로 떨어질 때면 내려졌던 이같은 조치에 그는 익숙했으나, 오늘은 웬지 여느 때와 다를 것이란 불길한 느낌이 든다. “10:00, 전력거래소, 전력수요 증가로 수급경보 발령. 조치사항 시행요망”, “10:00, 한국전력, 수급경보 준비, 실내온도 29℃ 유지”라는 첫 메시지가 떴을 때 이미 그런 예감이 왔었으나, 애써 지우려 했던 기억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숨돌릴 새도 없이 후속 메시지가 떴던 것이다.

“11:05, 본부, ‘주의’ 발령, 조명등 60% 소등, 냉방기 가동 중지”

예비력이 300만kW 이하로 떨어졌다는 신호가 왔다. 해당부서 50%에 대해 청색비상 발령, 변압기 탭 5%로 조정, 직접부하제어 시행 등의 메뉴얼에 맞춰 박 팀장은 후속조치를 내리고, 아이스마트(iSMART, 전력소비 컨설팅 시스템) 화면을 주시했다. 30분마다 수급상황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지만, 빨간색 전력수급선은 11시경 최고점을 찍은 뒤 그 근방을 맴돌고 있었다. 마우스 쥔 손에 물기가 느껴졌다. 손바닥에서도 땀이 흥건했던 것이다.

“김 차장, 어떻게 된 거야, 수요가 전혀 줄지 않고 있잖아, 어떻게든 수요를 줄여봐”

“이 차장, 거기 어떻게 되가는 거야, 말을 안들어? 잘 좀 설득해 보란 말이야”

박 팀장은 숨이 턱턱 막히는 찜통 속에 짜증이 순간적으로 밀려와,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놨다. 땡볕 더위에 현장을 누비는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살짝 들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다.

기상청에 확인한 바로는 이날 전국 대부분에 폭염 경보가 내려졌고, 서울은 최고 35.8℃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속이 타들어 가고, 추가 경보가 내려지지는 않았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핸드폰 화면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모니터 속 빨간 줄은 여전히 고점 주변에 있다.

피 말리는 오후가 저물어갈 무렵, 그래프가 아래로 꺾이기 시작했다. 메시지가 떴다. “17:50, 본부, ‘주의’에서 ‘관심’으로 변경 발령”

주위에서 안도의 한숨이 들려 온다. 잠시 뒤 ‘관심에서 준비단계’로 전환되더니 20시20분에 수급비상 단계가 해제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8월6일, ‘제2의 9·15 정전’상황으로 치닫다

지난 8월6일은 ‘제2의 9·15 정전사태’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박학순 한전 서울지역본부 수요관리팀장은 지난 6일을 작년 9·15 정전사태와 비슷한 상황으로 기억했다.

지난 3일 전력수급 전망치에 따르면 6일에 최대 7170만kW의 전력수요, 475만kW의 예비력 확보가 예상됐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265만kW의 수요조정치를 포함해 7429만kW의 올 여름 최대 전력수요가 발생했다.
박 팀장은 “수요 조정이 없었다면, 예비력은 14만kW 정도에 머물러 지난해와 같은 순환정전 사태가 발생했을 것”이라며 아찔해 했다.

6일 전력거래소는 수요시장 조정을 통해 135만kW, 한전은 직접부하제어를 통해 65만kW, 전압조정을 통해 65만kW의 전력예비력을 각각 확보해 위기를 넘겼다.

주변 상황적으로도 지난 6일은 ‘9·15 정전사태’ 당시와 비슷해 보인다. 9·15 정전사태 당시는 발전소 계획예방정비 기간 초반이었고, 지난 6일은 그날을 전후로 휴가가 예정돼 있는 준피크 기간의 둘째날이었기 때문이다. 준비가 미흡할 수 밖에 없었다.

박 팀장은 “피크가 예상되지 않던 시기에 수급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양 일간에는 유사성이 있다”고 말했다.

   
▲ 수급비상경보 ‘관심’단계 발령 뒤 한전 서울지역본부에 전력수급비상대책 상황실이 구성돼 운영되고 있다. (제공=한전)

◇서울지역본부 상황실, 연초부터 비상근무

한전 비상수급대책본부는 예비력이 400만kW 미만으로 떨어질 때, 백색비상 발령과 동시에 구성된다. 본사 비상수급대책상황실 하에 설치된 비상수급대책본부는 각 지역 상황실과 연결된다.

서울지역본부 상황실은 판매사업실장이 수요팀, 행정팀, 홍보팀, 송변전팀, 송배전팀 등을 총괄 지휘하게 된다. 상황실은 송변전상황실, 전력소상황실, 지사상황실과 연결돼 있다. 서울지역본부는 동부지사, 북부지사, 성동지사, 서부지사, 성서지사, 강북지사 등을 거느리고 있다.

지역본부 상황실은 위기시에 ▲수급상황 대응방안 수립, 시행 ▲비상시 수급조절 및 부하조정 업무 ▲전력수급 실시간 상황 안내 ▲전기소비절약 홍보대책 수립, 시행 ▲송변전·배전설비 이상 유무 점검 및 긴급복구 체계 강구 ▲단계별 부하차단 상황 사전 및 사후 안내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박 팀장은 “연초부터 공급능력 제한, 수요 증가 등으로 예비력 150만kW 확보도 어려울 것이라 예상됐다”면서 “거의 매일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끝나지 않는 비상 상황...절박한 하루하루

올해 동계 최대 수요(2월2일, 7383만kW)를 훌쩍 넘어섰던 6일이었다. 20시30분을 넘어서자 현장에 나갔던 직원들이 속속 후텁지근한 사무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계단 난간을 붙잡고 터벅터벅 올라오는 소리가 맨질맨질한 시멘트 바닥에 신발이 끌리는 소리와 어우러지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긴장이 풀어지자 맥이 풀린 모양이었다.

“팀장님, 아까 XX백화점 전력담당자가 영업해야 한다며 생떼를 쓰는 바람에 그거 설득하느라 애먹었습니다. 이리저리 따라다니니까 그제서야 1~2시간만 해보자고 꼬리를 내리더군요.”

현장 수요관리를 맡고 있는 김 차장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박 팀장을 향해 하소연하고는 다시 자판을 두드리며 수화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중구 상점가를 돌고 온 이 차장 또한 “‘장사하는 데 왜 방해하냐. 절전한다고 했으면 그렇게 알고 있지, 왜 찾아와서 귀찮게 하냐. 감시하러 왔냐’고 면박까지 하던걸요”라고 옆에서 거들었다.

박 팀장은 지금부터 이들이 고객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내일 전력사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확인하고, 또 줄여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뭔가를 얘기하려다 웃어넘기고 말았다. 6일 피크를 계기로 7일부터 주간예고제가 실시되기 때문이다.

박 팀장은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는 직원들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전기료 문제를 떠올린다. 값싼 전기료가 잘못된 시그널을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비싼 전기를 싸게 쓸 수 있는데, 누가 가스며 석탄을 쓰겠는가. 전기료만 적정히 매겨져도, 직원들의 이 고생은 좀 덜할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밤 11시가 넘자, 직원들이 막차를 타기 위해 자리에서 하나 둘씩 일어선다. 박 팀장은 “여러분 덕에 오늘 수급 위기를 넘겼다”며 다함께 박수를 치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박 팀장은 내일 전력수급 상황을 염려하며 12시 기상예보를 듣다 잠들고, 6시 기상예보에 귀를 기울이며 하루를 출발할 것이다. 내일도 긴박한 하루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한전 주간예고제: 예비전력 500만㎾ 미만 혹은 최대전력 경신이 전망될 때 사전 약정고객을 대상으로 시행을 예고하고, 당일에 일정수준 이상 전력절감을 할 경우 지원금을 주는 제도다. 준피크 기간에는 kW당 640원, 피크 기간에는 kW당 710원이 각각 계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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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태규 기자 midas55@dtoday.co.kr

네이트온 아이디 : sunt1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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