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신한·우리·하나금융 등 중간지주 '첩첩산중'

글로벌시대를 주도할 국내은행들이 해외진출 측면에서 언어소통은 물론 자본조달의 원천적 어려움 등 전략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금융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형화된 은행계 금융그룹들은 규모의 경제성을 활용하지 못한 채 아직도 지점이나 현지법인 설립과 같은 전통적 방식이 전부라는 점이다.

국내 은행지주회사의 새로운 기회를 시사한 '중간지주회사를 활용한 국제화 전략'이라는 한국금융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주된 의의를 두는 플래그십스토어(flagship store) 형태의 해외진출은 신성장동력을 확보해 수익성을 높이려던 원래 국제화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시장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확보되지 않는 교민 대상의 소매금융업무는 한계가 있고 네트워크가 약하고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현지인 고객을 유치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해외진출 현황을 보면 긍정적 성과 보다는 전략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지만 독자경영과 투명경영, 별도의 재무제표 등 특화된 역량구축이 가능한 중간지주회사 형태가 대안책으로 조명받고 있다.

KB금융그룹 관계자는 "해외 지점으로 뉴욕, 광저우, 쑤저우, 하얼빈, 동경, 오클랜드, 호치민, 오사카, 현지법인으로는 런던, 홍콩, KB캄보디아은행, 해외사무소로는 하노이, 뭄바이, 지분 투자는 BCC에 글로벌네트워크를 갖고 있지만 중간금융지주회사 자체를 검토한 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한금융그룹 관계자는 "금융기관이 해외 진출을 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은 진출목적과 진출지역이 그룹의 전략에 부합하는지, 진출 예정 지역의 해외자본에 대한 규제, 진출시장의 성격 등 여러가지 고려해 사무소, 지점, 현지법인, 조인트벤처, 중간지주회사 등을 결정한다"며 "아직까지는 이미 진출한 해외 국가에 대규모의 중간지주형태로 진출할만한 지역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리금융그룹 관계자는 "6월 현재 현지법인 13개와 그 현지법인에 소속된 지점이 49개, 별도 지점이 13개, 사무소 5개로 해외진출을 추진하고 있지만 중간지주 형태는 그룹의 지배구조가 바꿔어서 여력도 없고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머징마켓에서는 지점영업으로 출발해 현지 사정에 정통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현지은행을 인수하는 진화적 단계를 밟아야 하지만 규제당국의 정책 불확실성이 걸림돌이다.

국내은행들의 성과지표를 감안할 때 지금보다 몇 배나 높은 관리비용과 규제비용을 지불하면서 HSBC, 씨티, SC와 같은 글로벌 금융그룹의 조직구조를 지향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현재 HSBC는 국내 은행산업의 약 3배에 달하는 약30만 명의 인력을 고용하는 데 반해 자산규모는 1.4배(US$2,556 bil.) 정도에 불과하다. 글로벌은행들은 고객의 니즈에 부합하고 각국의 규제수준을 준수하기 위해 많은 인력을 채용하지만 전문성을 바탕으로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고비용 고수익 사업구조라는 것이 핵심이다.

◇은행의 해외진출은 빅뱅식 전략=향후 국내 은행계 금융지주회사들은 시장지배력이 높은 현지 은행을 인수해 직접 진출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빅뱅식 해외진출 전략이 고려사항 중 하나다.

선진국시장에서 시장지배력이 높은 은행을 인수하는 것은 M&A 비용도 크고 인수 후 직접 경영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빅뱅식 해외진출은 이머징마켓 중심이 주요 전략으로 떠오른다.

하나은행은 중국 지린은행에 3700억 위엔을 투자해 지분 18%를 인수하는데, 하나금융그룹은 플래그쉽(flagship)을 탈피한 영업에 성공, 타 금융지주회사들과 다른 영업실적을 중국시장에서 기록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장에서는 유동성확보가 시급한 유럽계 금융회사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아 이들의 지분을 인수한다면 현지화 작업은 보다 더 빨라진다.

단독으로 진출하는 방식 외에도 동종.이종 금융업종간 협력,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협력 등 여러 형태의 결합을 통해 현지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빅뱅식 접근방법을 적용할 수 없는 은행들의 경우는 지점 설립과 현지법인으로 전환, 일부 지분 투자, 현지 소형 금융회사 인수 등 다양한 방식과 더불어 기존에 강점이 있는 기업금융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빅뱅식 해외진출 성공요건=우선 중간지주회사와 같은 조직구조 측면의 보완이 필요하다.

순환보직 인사와 단기적 시각의 해외영업, 본사 중심 의사결정 등의 영업관행이 있는 한 금융회사의 해외진출 성공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에 지주회사 밑에 또 다른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중간지주회사제도는 해외 사업포트폴리오의 종합관리를 위해 바람직한 조직체계로 알려져 있다.

김 연구위원은 "내부적 전문인력 확충이나 관련 조직의 일부 확대 같은 미봉책으로는 금융의 국제경쟁력 확보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동안 분야를 막론하고 은행의 인적 역량 제고를 위한 외부 전문가 영입은 성공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고 말했다.

◇중간지주사 도입..독자경영 투명한 의사결정 가능=중간지주회사제도의 도입은 해외부문만의 재무제표를 별도로 보고할 수 있고 전략적 관점에서 과감한 투자도 가능하도록 만드는 등 해외사업본부 내에 특화된 역량 구축이 용이하다.

또 국내외 영업의 구분계리를 가능하도록 만들어 전략과 인사, 예산, 경영계획 등 전 부문에 걸쳐 해외부문의 독자경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진출희망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에 중간지주회사를 직접 설립하면 독립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체계를 구축할 수 있어 지역 내 M&A시장의 주요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다.

일본의 미즈호(Mizuho) 그룹은 미국이 진출한 일본기업을 대상으로 한 IB 서비스 강화를 위해 금융지주회사 자격을 미국 내에서 획득하고 중간지주회사를 설립했다.

중간지주회사를 지주회사와 핵심자회사 중 어디에 연결시킬 지 여부는 고객과 핵심사업 부문의 상황을 종합 고려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

◇빅뱅식 해외전략은 지배구조 선진화부터=시스템 업그레이드를 통한 빅뱅식 해외전략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경영의 연속성이 확보될 수 있는 풍토조성 등 지배구조의 선진화 작업이 필요하다.

해외진출과 현지화의 원활한 정착을 위해서는 금융회사의 과감한 투자와 도전적인 기업문화가 필요하고 이것을 통제하기 위한 적절한 지배구조도 병행할 과제다.

김 연구위원은 "중간지주사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해외부문의 수익은 계속 해외에 투자할 수 있고, 초기투자 기간 동안의 부실 발생 또는 적자의 책임에 대해 최고경영진이 자유로울 수 있는 분위기가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