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지시로 52년 계획 세워
폐허가 된 서울 시가지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시민이 한꺼번에 돌아와서 전에 살던 집터에 다시 집을 지어 서울 시가지는 전쟁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판이었다. 따라서 간선도로망.뒷골목 정비.공원 조성.하수도 등 도시기반시설 조성을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정작 전후 첫 복구사업은 시신 매장작업이었다. 무너진 건물 잔해와 가로수를 치우고 파괴된 도로.상하수도 시설 등을 정비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아직 많은 시민이 돌아오지 않은 때여서 이런 일을 할 인력을 구하기도 매우 힘들었다.
장과장은 “이승만 대통령.밴플리트 장군.김태선 시장을 모시고 명동.진고개.남대문 일대를 여러 차례 돌아다녔다. 당시 부산에 있던 李대통령은 전후 복구계획을 서둘러 수립하라고 지시한 뒤에도 마음이 안 놓였던지 자주 서울에 올라왔다”고 회고했다. 이들은 폐허를 걷다가 지치면 진고개(충무로) 2가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다방에서 차를 마셨다고 했다.
세부 계획으로는 ▶광화문 네거리~중앙청 간 도로의 폭을 53m에서 1백m로 확장▶광화문 네거리~오간수교 간 도로의 폭을 50m로 확장하기 위한 청계천 오간수문까지 복개▶중앙청 앞.광화문 네거리.안국동.서울역 앞 등 모두 19곳에 광장 조성 등이었다. 이와 함께 을지로3가.충무로.관철동.종로5가.묵정동을 포함, 모두 19곳이 구획정리사업 대상 지구로 선정됐다.
이처럼 거창한 도로.광장 신설 및 구획정리사업 계획을 세웠지만 해당 토지를 사들이기에는 서울시의 재정이 넉넉지 못했다. 따라서 이들 계획은 70년대 말 구자춘 시장에 이르러서야 마무리 됐다. 전쟁 직후 혼란기에 서울 도심의 골격이 되는 도시계획이 이 정도나마 마련됐던 것이 다행스럽다. 하지만 당시 폐허의 서울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들의 공적이 대부분 잊혀져 아쉽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