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주도 스웨덴식 부실채권정리 벤치마킹 시점

국내 가계부채가 일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책대응이 어려운 대차대조표 경기후퇴의 요인이라는 지적과 더불어 여러 가지 불안을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GDP 대비 가계부채의 규모 자체가 이미 높아져 있고, 상환구조면에서 대내외 충격에 취약한 것은 물론 글로벌 차원의 불안요인과 맞물려 시장차원의 조정이 어려운 심각성을 안고 있다.

자산가치 급락은 소득격차 보다 심각한 자산 양극화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지적한 한국금융연구원의 ‘대차대조표 경기후퇴에 대한 대응방안’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경우 민간 보유자산의 80%가량이 부동산으로 흘러 소비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자산처분이 필요하지만 조정과정에서 자산가격 급락과 시스템 차원의 금융경색, 장기적 경기침체를 자초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은 “대내외 여건상 현재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본격적 대차대조표 경기후퇴의 핵심 사안으로 떠오르는 중산층의 부채-자산 갭 확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억제함으로써 자산가치의 급락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상임자문위원은 이어 “정부주도로 펼쳐진 스웨덴식 은행부문의 부실채권정리를 통한 민간채무조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부실대출매입을 위한 민관투자펀드를 운영해 자금흐름의 장애요인을 제거하고 부채상환부담의 증가로 줄어든 민간수요의 보완차원에서 재정지출의 제한적 확대를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산과 부채 갭 커지면 실물경제 압박=향후 성장률의 하락세 속에 과잉부채에 대한 조정 부담 증가와 자산가치 하락을 동반하는 전형적 대차대조표 경기후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현재는 글로벌 조정이 진행중이어서 대차대조표 경기후퇴의 파장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부채과잉상태에서는 자산처분 자체가 자산과 부채의 갭을 확대시키면서 유동성 축소를 통해 실물과 금융의 동반위축을 초래한다.

최 위원은 “부채상환부담에 시달리는 민간부문이 더 이상 빚을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양적완화는 유동성 함정과 맞물려 유효한 정책수단이 될 수 없다”며 “특히 과거와는 달리 전세계가 비슷한 여건이므로 유동성 함정에 빠질 경우 성장회복을 통한 인플레이션 수반 탈출작전도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최 위원은 또 “지금은 과잉부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선택의 폭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글로벌 차원의 부채감축 노력과 더불어 시장여건이 경색되어 있는 데다 추가적 부채감축 노력 자체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수출경쟁력과 환율안정이 중요한 신흥시장의 경우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대외경쟁력 유지를 위해 수출의존적 경제는 환율안정에 치중하므로 부채.디플레이션 국면하의 수요감소와 인플레이션 동반현상이 가계부문으로 옮겨붙기 쉽다. 문제는 당장의 성장동력을 보호하느라 서민경제가 추가적 조정부담의 충격(인플레이션)과 이후의 디플레이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현재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단순한 증상완화 노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민간 채무조정에 초점을 맞춘 전반적 정책조율을 통해 핵심담보의 부실화를 방지하는 것이다. 채무조정이 어려울수록 부작용이 큰 거시적 차원의 조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조정 이후 반등 향한 핵심역량 초점=이미 국내의 가계부채는 글로벌 차원의 조정하에서 상당한 부실화 위험에 놓여 있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가계부채(가계대출+판매신용)는 연 평균 9%대의 빠른 증가세(2005년 말 대비 68%증가)로 명목GDP 대비 비중이 2011년 기준 74%까지 커지면서 대내외 충격에 취약한 특징을 보였다.

실제 국내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0년 기준 150%를 상회, OECD 주요 8개국 중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현 시점에서 국내가 세계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 이면에는 조정 자체가 지연된 측면이 우선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과거의 대완화기간과는 달리 조정 자체가 곧바로 담보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 쉽게 접근하기도 어렵다.

이미 국내 경제가 심각한 국면에 진입한 이상 정책목표는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

최 위원은 “현재는 조급한 문제해결 보다는 조정 이후의 반등을 위한 핵심역량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며 “그 대상은 중산층과 서민층이어야 하는데 중산층 이하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켜져 양극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어 신속한 정부개입으로 민간주체의 조정을 최대한 지원함으로써 담보가치의 급락과 부채-자산갭의 확대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 대차대조표간의 갭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 선택은 보다 적극적인 채무조정과 유동화와 시장기능 회복이다. 과잉부채와 연관된 디플레이션은 시장 변동성만 키우고 이후의 완만한 조정을 방해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가 바로 스웨덴 방식에 따른 채무재조정이다.

은행 통한 민간채무조정 스웨덴식 경험=이미 80년대 중반 스웨덴은 신용팽창을 경험했다. 실질주택가격지수는 85년 97.8에서 90년 136.2로 높아졌으며 인플레이션의 급등과 더불어 가계 및 기업부문의 신용공여도 크게 증가했다. 87년과 89년 사이에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문의 부채가 116.9%에서 131.5%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런 신용팽창 이후 버블붕괴에 따른 상업은행 자산의 질적 저하와 중개기능 위축으로 GDP는 91년에서 93년까지 3년 연속 줄었다. 그러나 스웨덴은 위기이후 부실관리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로 가계부문의 건강을 되찾았다. 부채/가처분소득비율이 88~89년 130%에서 96년 90%대, 가처분소득 대비 이자지출도 90년 10%에서 97년 5%대로 줄었다. 같은 기간 구제비용도 GDP 대비 6%대에서 2%대로 줄었다.

무엇보다 민간부채 감축의 첫 번째 성공요인은 은행을 통한 민간채무 손실의 시장평가와 조기확정이다. 최대한 신속한 거래가 가능하도록 현실적 자산가치의 평가가 이뤄져서 회복을 위한 후속조치의 역할을 했다.

이를 위해 당국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2009년 미국의 민관공동투자프로그램이나 민관공동투자프로그램도 이와 유사한 노력을 통해 민간시장 참여자를 끌어들임으로써 보다 신속한 거래가능 가격파악을 도모했다. 특히 민간부문 대차대조표상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부분을 조기 선별하고 분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당시 스웨덴 당국은 대손처리를 한 은행부채를 보증하면서 지분을 확보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92년도의 Nordbanken 지분인수다. 그 결과 당국은 두 개의 은행을 완전 국유화했으며 전체은행의 25%에 육박하는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은행자산은 우량과 비우량자산으로 나뉘어졌는데 비우량자산은 자사운영기금으로 이관됐다. 이같은 정부주도의 부실자산 분리작업이야말로 금융권의 신뢰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었다.

둘째는 채무조정 방법을 최대한 다변화했다는 것이고 셋째로 이미 어려운 시장에 과도한 조정부담이 집중되지 않도록 사전적인 배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부실자산을 관리하는 자산운용기금은 3년 내에 인수한 부실자산을 처분해야 하는 규정적용에서 제외시켜 시장상황 악화시의 매물급증 부담을 사전에 완화했다.

이런 예외규정 덕분에 점차 시장기능이 회복되면서 포괄보증은 96년 철회, 정부무문에 이같은 여파가 미쳐서 스웨던 정부는 순차입자로 전환해 공공채무가 90년대 GDP의 42.7%에서 3년 뒤 72%로 늘어났다. 정부가 부실자산의 관리에 적극 나선 결과다. 그러나 당시의 개입은 단순한 추가 유동성 공급이 아닌 채무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개입이었다. 당국의 증상완화적 조치가 아닌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부실관리로 이후의 도약을 위한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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