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건 작건 모든 사고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다.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는 것이 사고처리의 기본 원칙이다. 사고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밝혀지면 처리방향이 나온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지극히 간단한 원리인데도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 언제부터 이렇게 달라졌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대표적인 사례가 저축은행 퇴출사고가 아닌가 싶다.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엄청난 사고인데도 뒤처리가 아리송하다, 책임지는 사람 한명도 없다니 기가 찰 일이다.

국정감사에서 들어난 사태의 진상을 보자. 지난해부터 발생한 부실 저축은행 퇴출 사태로 인해 소모된 비용이 총 26조6000억원을 넘는다. 보상을 받지 못한 피해자는 10만명, 피해액은 1조3000억원에 이른다. 국회 정무위원회 민병두 의원이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로부터 건네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들어난 피해 내용이다.

예금자보호를 받지 못하는 5000만원 초과분이 8만여명에 5000억, 후순위채 피해자는 2만6000여명에 8000억원이 넘었다. 사고처리를 위해 예금보험공사에서 17조5000억을 투입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앞으로도 7조7000억원 이상 추가로 집어넣어야 할 판이다.

피해자 가운데는 은퇴 후 노후자금을 이자 조금 더 받는 맛에 저축은행을 택한 노년층이 많다. 나이 들어 총명이 흐려지고 정보에 어두운 그분들에게만 당신들 잘못이니 당신들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구제방안을 내 놔야 할 것 이다. 그런데도 시원한 해결책이 아직 들리지 않는다.

특히 금융 감독당국은 저축은행의 총자산 규모가 2007년 53조에서 2009년 86조원으로 증가해 감독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검사인력 축소 ▲재제 미흡 ▲피감기관과의 유착 강화 등으로 원활한 감독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민 의원이 "'금융당국에서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 책임지고 물러난 사람의 명단'을 요구했지만 금융위는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했다 한다.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졌고 수많은 피해자가 고통을 받는데도 이 사태에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금융당국의 고위 책임자는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며 "그것이 피눈물을 흘린 저축은행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직업 윤리"라는 민 의원의 지적에 동의한다.

저축은행 사태는 감독 당국의 도덕적, 정치적 무책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싶다. 예전 같았으면 생각조차 할 수 있겠는가? 감독 라인에 있는 사람들은 줄줄이 옷을 벗었을 것이다. 비단 물러나는 것이 능사라 할 수는 없지만 하도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금융당국은 남의 일 보듯 손 놓고 있지 말고 좋은 방향으로 사태를 해결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유형의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기능을 철저히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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