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저가공사 낙찰자 피해 및 구제방안 대책 시급”
건산연, “예정가 적정성 검증 및 건설사 이의신청제” 주장

▲ 공사가 한창인 한 아파트 건설현장 (사진=뉴시스)
[일간투데이 김대중 기자]  # 사례 1.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지난 7월 입찰 공고한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연결 철도건설 공사’(일명 T2 사업)는 사업비가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1000억원 가까이 사업비가 부족해 건설사들이 울상이다.

입찰참여 건설사 한 관계자는 “인천공항공사 예산 자체가 처음부터 부족한 탓에 사업비가 다소 적게 책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구체적인 금액은 밝힐 수 없지만, 적어도 수백억원 수준으로 사업비가 부족해 어려운 공사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이때문에 입찰을 저울질했던 SK건설은 채산성 부족을 이유로 중도 포기했다.

# 사례 2. “사내 임원직은 1년 단위로 고용되는 계약직과 다름없어요. 요즘 같은 불경기에 자리보전을 위해서는 건설사는 수익성 제고보다는 실적이 우선 순위입니다.” 연말 인사를 앞두고 있는 한 대형건설사 임원의 하소연이다.

이상의 두 사례처럼 건설사가 실적 쌓기에 급급한 나머지 채산성이 떨어지는 공사임에도 불구, ‘닥치고 수주’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저가 공사 수주로 인한 부실공사와 함께 하도급업체의 줄도산마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무엇보다 건설사 생리 구조를 뻔히 꿰뚫고 있는 발주처의 횡포가 심각하다는 데 있다.

건설사가 실적에 눈이 멀어 저가 공사인 것을 감안하고도 입찰에 참여하는 관행을 악용, 발주처는 각종 공사 입찰 과정에서 최소한의 예산으로 사업을 집행하기 위해 예정가격을 감액, 발주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그 피해를 건설업계가 고스란히 떠안는 상황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정가격’은 입찰 또는 계약 체결 전 낙찰자 및 계약금액의 결정 기준으로 삼기 위해 미리 작성·비치해 두는 가액을 말한다. 이는 예산상의 총 공사금액 범위내에서 결정되며, 현행 공공공사 입찰에서는 낙찰 가격의 상한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발주기관에서는 설계·엔지니어링업체가 작성한 설계가격이 자신의 예산을 초과하게 되면 이를 감액해 예정가격을 작성하고, 발주하는 사례가 건설업에서는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어, 이에 대한 제도적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발주기관 예산 맞추려 ‘적자 공사’ 불가피

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발주기관은 수년 전의 설계가격을 활용해 예정가격을 작성하거나 예산 수립 단계서 개산견적이 잘못돼 예산이 낮게 배정됐음에도 불구 예산에 맞추기 위해 설계가격을 인위적으로 삭감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건설사는 일단 낙찰을 받으려면 예정가격 이하로 투찰할 수밖에 없다”며 “현실적으로 건설업체의 견적 능력이 부족하고 다수의 공사에 입찰하고 있는 상태에서 예정가격의 적정성에 대해 검토하지 않고 입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발주처의 공사예가가 잘못됐거나 낮게 책정됐음에도 불구, 건설사는 이를 신뢰하고 그 이하로 투찰할 수밖에 없어, 공사를 원가 이하로 수주하게 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

게다가 건설사는 공사 낙찰이나 계약 후에 적자를 인지해 계약을 포기할 경우 입찰보증금 혹은 계약보증금이 국고로 환수되는 것은 물론, 당해 건설사는 부정당업자로 지정돼 6개월 간 공공공사 입찰이 금지된다.

결국 건설사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불가피하게 적자 시공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국내입찰시장의 경우, 건설사는 발주자가 설계서 등 입찰 정보를 제공하면 이를 검토해 입찰 참가 여부를 결정한다. 건설사는 견적 작업을 통해 투찰 가격을 결정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러나 투찰 결과나 계약에 대한 책임은 건설사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원칙으로 인해 그동안 발주자의 고의·과실에 의해 예정가격이 부적합하게 작성됐다 하더라도, 공사원가 이하의 수주에 대해서는 입찰자의 책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법원 판례이며, 정부도 이같은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다.

건설사는 투찰 이전에 충분한 견적 기간이 있었고, 예정가격에 의문이 있을 경우 질의도 가능했기 때문에 설령 예정가격이 불합리하더라도 적자 수주에 대해서는 발주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강운산 건설산업연구원(이하 건산연) 연구위원은 이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만약 발주자가 정부 회계예규를 준수하지 않고 예정가격을 부적합하게 작성했거나, 공사원가 이하로 낙찰이 이뤄질 것을 인지하고서도 자신의 예산에 맞춰 고의적으로 설계가격을 삭감해 예정가격을 작성하는 등 부적합한 행위가 있었다면, 발주자의 책임은 완전히 면책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낙찰자 피해 커져도 책임 못 물어…발주처와 ‘수직적 관계’ 악순환

최민수 건산연 연구위원 역시 “발주자가 고의적으로 적자 수주를 유도하거나 혹은 적자 수주가 발생할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낙찰자의 피해에 대해 발주자의 책임이 완전히 면책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예정가격은 공공공사 입찰에서 덤핑 입찰을 판단하고, 낙찰 상한이 되는 가격이므로 원칙적으로 정부가 정한 원가 계산 방식 등 합리적인 근거에 의거해 산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원가 산정 과정의 계산 착오나 누락, 오류 등은 발주 단계에서 예정가격 작성시 수정은 필요하나, 발주기관에서 설계가격을 자의적으로 수정해 예정가격을 작성한 경우는 그 내역을 정확히 고지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정부 회계예규를 살펴보면, 원가 계산시 거래 실례가격 또는 지정 기관이 조사·공표한 가격, 정부 노임 단가 등을 적용해야 한다. 또 예정가격을 부당하게 감액하지 않아야 하고, 불가피하게 원가 계산 금액과 다르게 예정가격을 결정한 때는 그 조정 사유를 예정가격 조서에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민수 연구위원은 “발주기관이 작성한 예정가격의 원가 내역에 대해 외부 전문기관의 검증 체계를 구축하거나, 입찰 과정에서 이의신청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방적 예가 감액, ‘신의성실 원칙’ 위반

발주처 횡포로 낙찰자들의 적자 시공이 계속되면서 원가 이하 낙찰자가 계약을 포기하거나 계약을 해지해도 부정당업자 제재를 면책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물론 발주자의 고의·과실에 의해 예정가격이 과도하게 감액됐고, 이로 인해 원가 이하로 낙찰된 사실이 인정될 경우에 한해서다.

강운산 건산연 연구위원은 “발주자가 정상적인 원가계산에 의해 산정된 설계가격을 무시하고, 이를 고의적으로 감액해 예정가격을 작성했다면, 이는 ‘민법’과 ‘국가계약법’에서 천명하고 있는 도급계약의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연구위원에 따르면 발주자는 어떤 정보에 대한 소유자 또는 관리주체이기 때문에 특정 사안에 있어서 자신만이 알고 있는 정보가 있으며, 그 정보에 대해 우월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만약 발주자가 입찰자에게 공사계약에 있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거나, 혹은 정보를 제공했더라도 그 정보에 결함이 있다면 발주자에게 ‘정보 비대칭’과 관련된 책임이 존재한다는 근거에서다.

특히 ‘국가계약법’ 등에서 예정가격을 낙찰가격의 상한으로 규정하고 있는 상태에서 예정가격의 인위적인 감액은 건설사의 손해를 강요할 가능성이 짙어 개선의 필요성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고 강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낙찰자 피해 축소·구제 방안은? ‘제3의 감시기관’ 도입

공공공사를 수주하려는 건설사에게 통상의 경우라면, 시공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금액을 예정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러한 수준으로 예정가격을 결정해야 한다는 게 건설업계 중론이다.

하지만 여전히 원가 이하의 수주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건설사가 책임을 떠안는 시스템이 건설업계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발주자가 예정가격을 부적합하게 작성했고, 그것이 입찰자가 적자 수주를 하게 된 일부 원인을 제공했다면, 발주자 측에서도 책임을 부담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원·하도급계약과 마찬가지로 만약 발주자가 거래상의 지위를 활용해 계약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강요하거나 손해를 유도하는 것은 불공정한 행위로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건산연은 원가이하 수주 낙찰자 피해개선 방안으로 ▲예정가격 작성 과정에서 원가계산 내역의 수정 사유를 제한하고 ▲발주자의 자의적 수정 내역에 대해 입찰자에게 충분한 고지 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제3의 전문기관에서 예정가격의 적정성에 관한 검증 제도 도입 ▲이의신청제도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만 “입찰자 측면에서 부적합한 예정가격에 기인한 원가 이하의 수주에 대해 낙찰자의 피해를 경감하는 방안을 강구함과 더불어, 근본적으로 건설업체의 견적·적산 및 원가관리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건산연은 이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 최근 ‘불합리한 예정가격에 의한 낙찰자 피해 및 구제방안’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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