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최원일 기자] 조간신문을 뒤적이다 눈이 번쩍 튀는 기사를 접했다. 글자 그대로 낭보(朗報)다. 가끔 보는 선행기사와는 느낌이 다르다. 시장바닥에서 고생고생하며 덜 쓰고 모은 돈을 미련없이 대학에 기부한 할머니 기사를 볼 때와도 다르다.

고등학교를 나와 대기업 공장에만 근무하다 그 회사 사장으로 승진했다는 조성진씨 얘기다. 소위 일류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나와도 취업이 어려운 판국이다. 이런 시점에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은 강한 메시지를 던저 준다. 마침 대입 학력고사 성적이 발표되고 입시가 진행되는 때라 학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조씨는 서울 용산공고를 나와 금성사에 입사했다. 36년간 세탁기 하나만 붙잡고 매달렸다. 기술개발에 전념하여 세계최고제품을 만들어낸 그가 이번 그룹인사에서 사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고졸이라도 능력만 탁월하면 출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퀘거가 아닐 수 없다.

금성사는 지금 LG전자의 전신이다. 그가 입사했던 70년대 금성사는 업계 최고업체였다. 1958년 출범한 이 회사 54년 역사에서 고졸 사장을 배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후발이면서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한 삼성전자에서도 아직 고졸 출신 사장은 나오지 않았다.

함께 일하는 공장 동료들은 신제품이 탄생하면 그쪽으로 많이 옮겨갔다고 한다. 특히 각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칼러TV나 스마트폰같이 번듯한 사업으로 몰렸다. 그러나 조 사장은 묵묵히 세탁기 모터 개발에만 힘을 쏟았다. 딴데 눈 돌리지 않고 오로지 한길만 팠다. 특유의 뚝심과 오기로 공장에서 먹고 자며 기술을 익혔다. 다른 건 몰라도 세탁기는 내가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각오로 숱한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그 결과 세탁조에 직접 연결된 모터로 작동되는 다이렉트 드라이브(DD) 시스템(1998년), 듀얼 분사 스팀 드럼 세탁기(2005년) 등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것이다. 그가 오랜 세월에 걸쳐 갈고 닦아 만든 세탁기는 세계 판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 사장은 사장 자리에 오른 것도 기쁘지만, 그보다는 우리 기술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데 기여했다는 데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출세한다는 인식이 우리사회엔 팽배해 있다. 그걸 당연한 걸로 받아 들인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한방 카운터 펀치를 먹였다고 할가. 아무튼 시원하고 통쾌한 기사다.

이런 인재들이 더 많은 제조업체에서 배출되길 기대한다. 과거 금융계에선 상고출신 은행원이 은행장이 된 사례가 더러 있었다. 공무원 사회에서도 초등학교만 나온 분이 학교 고용원으로 시작해서 꾸준히 노력한 결과 임명직 시장, 도지사를 거쳐 국세청장을 역임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공고출신이 큰 그룹의 모회사겪인 대규모 제조업체의 사장으로 박탈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는 기억이다. 제조업체에서 이런 사례가 많아지길 바란다.

조 사장의 외길 성공사례를 보며 수험생들이 뭔가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수능에서 좋은 성적 내기가 어렵다. 성적이 좋다고 꼭 원하는 대학 가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일류대학 가서 우수한 성적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졸업해도 원하는 직장이 기다리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꿔보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가 하는 마음에서 장황하게 조사장 사례를 든 것이다. 그가 경영에도 탁월한 실적을 올려 수많은 고졸출신 직원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더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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