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태공 논설위원] 3일 안철수 캠프의 해단식이 있었다. 지난달 23일 전격적인 후보 사퇴 이후 잠행에 들어갔던 안철수씨가 10 만에 해단식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온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역시나 그는 특유의 애매모호한 화법과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는커녕 선거 정국을 오히려 더욱 안개 속으로 몰아넣은 듯하다.

각자의 이익과 바람에 따라 여러 가지 정치적 분석이 있겠지만, 그러한 결과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과정을 ‘안철수식 생각’에 빗대어 ‘안철수의 착각’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착각은 단순한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간과한 데 있다. 그는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서 “풀장에서 수영을 익혔기 때문에 태평양에서도 헤엄을 칠 수 있다”거나 “벤처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그보다 규모만 큰 국가 경영쯤은 문제없다”는 등으로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일부의 우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시각을 보여 왔다.

문제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부산 출신인 그가 해수욕장에서 한번이라도 헤엄쳐 보았거나 최소한 한번이라도 배를 타본 경험이 있다면 절대로 그런 표현은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거센 파도가 이는 바다에서 헤엄을 칠 수 있다는 것은 필요조건일 뿐 생존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한 개인의 성공과 실패는 물론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정치가 바둑책을 달달 외어 어느 정도 수준에서 대국이 가능한 한가로운 게임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시대정신은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지만, 그 정신을 실현하는 지도자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는 출마선언에서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라는 SF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새 시대, 새 정치를 요구하는 국민의 여망에 떠밀려 나왔다는 그의 정치 입문의 변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1년여 지속된 그의 여론조사 지지도는 20퍼센트대였다. 어떤 발언에도 ‘국민을 위하고, 국민이 원한다’는 언급을 빠뜨리지 않았던 그로서는 실망스러운 수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정치판에 직접 뛰어들어 그의 정치를 본격적으로 실험해 보겠다는 의지를 굳혔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래가 눈앞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충실한 전령사의 역할에도 미치지 못했다.

셋째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좋은 목적을 가졌기 때문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괜찮다는 인식이야말로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었던가.

비록 출마선언이 늦었다고는 하나 여론조사 결과는 항상 2, 3위였고, 그 둘을 합해야 겨우 1위와의 경쟁이 가능한 정도였다. 따라서 ‘후보 단일화’라는 마이너 그룹 전가의 보도를 무시할 수 없었고, 정권교체에 모든 것을 걸고 있던 야권과 주변의 강요를 ‘국민적 여망’이라는 미명(美名) 하에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 굴레를 꿰차고 말았다.

뒤집을 수 없는 여론조사보다 확률 50퍼센트의 단일화 성공 가능성이 한층 실현 가능해 보였을 것임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달콤한 기대와는 달리 그 굴레에 묶여 스스로 질식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사냥꾼에 쫓긴 꿩이 덤불에 머리만 감추듯이 그 국면을 피하고 말았다. 일찍이 좌절을 경험해 보지 못한 책상물림의 전형적인 형태다.

마지막으로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속된 말을 무시한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정치사는 일찍이 촉망받던 많은 정치인들이 순간의 착각이나 실수로 대중으로부터 잊혀지거나 외면당했음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그러한 사례는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을 예고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해단식에 등장한 그는 사퇴선언 당시 보였던 고뇌로 일그러진 얼굴이 아니라 출마선언 때보다 더 자신에 찬 모습으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당당함을 보였다. 그의 지지자들 또한 그러한 그를 열광적으로 응원함으로써 그의 결단을 추인했다. 그렇지만 국민은 우둔한 듯하지만 가장 현명한 집단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곁눈질하는 것 같지만 두 눈으로 생생한 역사의 기록영화를 찍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찍이 200년여 전에 마키아벨리는 “지도자는 지옥으로 가는 길을 잘 알고 있어야 대중을 천국으로 이끌 수 있다”고 설파했다. 안철수씨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보약이 되는 말일 것이다. 막연한 생각보다 한때의 착각을 교정한 참생각은 무엇보다 강력한 진실의 도구가 된다. 귀한 인적 자원을 쉽게 버리기보다는 갈고 닦아서 더욱 가치 있게 쓰고자 하는 대승적 노력의 차원에서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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