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태공 논설위원] 세 차례 예정된 18대 대선 후보들의 TV토론 가운데 2차 토론이 끝났다. 한판 타이틀 매치를 겨룰 야당 후보가 선거일 20여일 전에야 결정되는가 하면, 그 단일화 과정에 매몰되어 정책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과 시기를 놓쳐 이른바 깜깜이 선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이번 두 차례의 후보 TV토론은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속설을 증명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사실 이러한 결과는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앞서 치른 미국 대선의 예에서 보듯이, 후보는 본인과 당이 확립한 정치 철학과 이념을 몸에 밴 정치 경륜을 통해 표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토론 대상후보 선정 기준에 따라 제3후보가 끼어듦으로써 토론 자체가 치열한 정책 공방이 아닌 3자 교통정리에 급급한 맥빠진 홍보전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지적할 것은 혼미하기는 하지만, 이미 선거의 판세가 어느 정도 확정되어 있는 마당에 뒤늦게 TV토론이 시작된 까닭이다.

이번 TV토론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단연 통진당의 이정희 후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안철수의 낙마(?) 덕분에 제3후보로 당당히 등장한 것이다. 지난 4·11 총선 과정에서 불거진 내부 투쟁으로 당이 두 쪽이 난데다 공천부정 사례가 공개됨으로써 국민의 지탄을 받는 통에 당의 존재는 물론 정치 위상이 땅에 떨어져 재기를 고민하던 차에 굴러온 떡이 된 것이다. 일부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 부작용마저도 “과연 이정희!”라는 반사효과를 거두는 데 일조했으므로 전반적으로는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세 후보의 득과 실

UCLA의 심리학 교수 앨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의 커뮤니케이션 이론 중 그의 ‘메라비언의 법칙’을 원용하면, 일반적으로 상대방에게서 받는 이미지는 시각 55%, 청각 38%인데 비해서 언어는 7%에 불과하다고 한다. 여기서 새길 것은, 상대방이 하는 말의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7%로 그 영향이 미미하며, 태도 등의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논리와 빠른 어투로 공격을 퍼붓는 이 후보에 비해 다소 어눌한 화법을 구사하는 문후보와 답답할 정도로 동어반복을 거듭했던 박 후보가 시청자들의 평가에서 점수를 깎이기는커녕 오히려 후한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문 후보는 이지적인 외모에 신사의 매너를 끝까지 보임으로써 지지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았으나 늘 지적되었다시피 뭔가 2% 부족한 것, 즉 ‘사나이다움’이라는--흔히 말하는 카리스마와는 다른-- 결정적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나름대로 분석하자면, 프레지던트(President)가 아닌 바이스(Vice) 또는 참모의 면모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이 후보는 사람들의 눈길을 단번에 빼앗을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만 입만 벌리면 험한 말이 튀어나오는 소위 술집여자의 천박함을 느끼게 만듦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일정 부분 카타르시스를 준 반면, 누구나 칭송해 마지않는 요조숙녀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반납하고 말았다.

박 후보의 경우,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곧음의 이미지를 잃지 않은데다가 상대적으로 토론에 약할 것이란 세간의 우려를 과외(?)를 통한 기교로 극복함으로써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없는 균형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결론은 TV토론으로 마지막 대반전을 꾀했던 문 후보의 전략이 별 성과를 얻지 못햇다는 것이다.

믿는 것은 성숙한 국민의 의식

성숙한 의식을 가진 많은 국민들은 대선이 혼미해지고 혼탁할수록 선거 자체보다는, 즉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보다는 그의 임기 중에 분열과 혼란 없이 국정이 안정되기를 희구한다. 선거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대립과 투쟁의 앙금을 걷어내고 모두가 힘을 합쳐 외부로부터의 위험을 제거하고 내부의 대통합을 이룩함으로써 진정한 선진 강대국이 되고, 그 여세를 몰아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기 원한다.

새 대통령이 과연 두 편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고 냉소를 보내는 일부 비관론자에게 미리 답을 하자면 “그럴 일은 없다”는 것이다.

잠시 영화의 한 장면을 빌려오자. 배트맨이 활약하는 영화 ‘다크 나이트(Dark Knight)’에서 악당 조커(Joker)가 설치한 함정--죄수와 시민이 탄 배에 각각 설치된 폭탄을 상대보다 먼저 터뜨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게임--을 배트맨도, 정의의 검사도, 시장도 아닌 오직 건전한 ‘시민 의식’으로 극복하는 장면이 시사하는 바다.

우리는 대통령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고 5년마다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느라고 국력을 낭비하기보다, 그가 그 권한을 국민을 위해 사용하도록 평소에 감시하고 또한 동시에 협조하는 진정한 민주 의식을 가진 국민이 더 많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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