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태공 논설위원] 단기로 4346년 계사년(癸巳年)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뀔 때마다 정신없이 달려온 한 해를 반성하며 ‘올해만큼은 꿈이 이루어지겠지’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평범한 시민의 일상일 것이다. ‘선거의 해’라고 불리는 지난해는 국내외로서 수많은 파장을 일으켰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교수신문은 2012년을 ‘거세개탁(擧世皆濁)’ 곧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하다’는 사자성어로 정의했으며, 옥스퍼드 사전은 총체적 난맥상을 뜻하는 '옴니솀블즈(Omnishambles)'를 2012년의 단어로 선정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험난한 한 해였던 것은 확실한 듯하다.

계사년은 육십갑자(六十甲子)에서 가운데 30번째 간지(干支)에 해당하며, 띠로 보면 흑사(黑巳), 즉 ‘검은 뱀’의 해가 된다. 따라서 올해는 양극에 치우치지 않고, 또 뱀이 상징하듯이 지혜와 다산(多産)의 한 해가 되리라고 덕담을 해본다.

연말에 정부는 올해의 경제성장률을 3%로 하향조정했는데, 마침 지난 26일 영국의 경제경영연구센터(CEBR)는 10년 후의 세계 경제를 전망하면서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GDP(국내총생산) 규모 2조 3000억 달러를 달성함으로써 세계 15위에서 12위로 올라서리라고 예상하여 위안을 주고 있다.

경제를 뒷받침할 정치 분야에서도 변화를 기대해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인수위에 ‘100% 대한민국 실현을 위한 국민대통합위원회’와 실업 등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한 ‘청년특별위원회’를 야심차게 설치했다. 박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강조해온 ‘대통합’과 ‘일자리 만들기’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존재하지 않아야 할 악덕집단으로 몰아세우던 광기와 증오의 적개심을 버리고, 서로 다른 생각과 이념을 한데 녹여 더 나은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용광로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또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편협함에서 벗어나 자원과 일자리를 나누는 공정사회로 진입하는 장치가 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대다수의 평범한 시민이 바라는 것은 따로 있다고 확신한다. ‘경제민주화, 정치쇄신’ 따위의 거창한 담론은 선거전략일 뿐 국민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딴 세상의 일이다. 주어진 여건에서 잘난 이웃을 부러워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시민의 바람을 먼저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첫째는 기초질서 확립이다.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제도적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서로 상충할 수도 있는 다양한 시민의 욕구가 법과 제도를 통한 민주적 절차로 해결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정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툭하면 거리로 뛰쳐나오고 심지어는 목숨을 건 고공농성이 불법으로 이루어지는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 물론 그러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불법행위는 동기에 상관없이 엄단함으로써 기초질서를 지키는 새 이정표를 만들어야 한다. 교통 등 공공질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둘째는 황폐해진 민생치안의 회복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칭송받던 우리의 치안상태가 위기가 아니라 이미 무너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어린이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날로 흉포해지는 데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 내에서뿐 아니라 학교나 공공장소 등을 가리지 않고 흉악범죄가 꼬리를 물고 있다. 정부는 항상 인력과 장비 등 예산 탓을 하는데, 그렇다면 국민적 합의로 예산을 충분히 지원할 것을 촉구한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사회에서 국민의 안전보다 더 시급한 일이 또 무엇이란 말인가.

셋째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일이다. 대선 캠페인 과정에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약자에게는 ‘절대적 복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찍이 영국의 사회경제사학자 리처드 토니는 “거리 위에서 빈부의 격차가 두드러지기 시작할 때면, 이미 그 사회는 위기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부자들은 길거리의 노숙자들을 보면서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지만 서민들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면서 스스로 부끄러워한다.

현대적 의미의 국가 기능에는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국민은 국가가 돌봐야 한다’는 엄연한 합의가 있다. 차상위 계층에 대한 부담을 의식하지 않고 우선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시급하다. 그런다고 해서 여태껏 자선과 기부를 아끼지 않은 선량한 시민들이 돌아설 리 없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패배의 충격을 딛고 새롭게 체제를 정비하려는 야권에게도 한 가지 권하고 싶다. 역대 최대의 지지를 보내준 48%의 국민에게 기대지 말고 자강불식(自强不息) 하기를 촉구한다. 사사건건 몽니를 부리기보다 대의를 위해 협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 다음 기회가 보장되는 것이다.

범야권 원로모임의 좌장격인 백낙청 전 교수가 창비주간논평 신년사에서 박 당성인의 공약이 ‘원탁회의’의 주장과 착각할 만큼 다름이 없었다고 토로하고 박 당선인의 “실패를 예단하고 미리 악담할 이유가 없다”고 평한 점을 새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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