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태공 논설위원] 올해 복지 관련 예산이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 복지예산 30% 시대의 문을 열었다. 2009년 기준으로는 GDP(국민총생산) 대비 복지비용 9%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끝에서 두 번째였지만 최근 5년간 37%의 가파른 증가율을 보임으로써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복지예산의 특징 중 하나는 여야가 대선 공약으로 약속한 복지 예산이 상당 부분 포함됐다는 점이다.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일자리 예산 등 이른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예산이 늘어났다.
경제 전문가들은 보편적 복지의 당위성을 강조한 나머지 ‘복지의 질’이 무시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작 복지의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정확히 제공되는 적격성과 복지의 성과가 뚜렷이 확인될 수 있는 충분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번 예산을 보면, 예산 규모를 짜맞추는 과정에서 상위 30% 계층까지 보육료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정작 필요한 예산이 엉뚱하게 삭감되는 일이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빈곤층 156만 명의 진료비를 지원하는 의료급여 예산 2800억여 원이 깎인 것이다. 상위 30%를 위해 우리 사회 최빈곤층 3%를 희생시키는 소위 적격성을 무시한 것이다.
게다가 차상위계층을 위한 예산 등도 대폭 삭감되었다. 소득은 기록되고 있지만 기초생활수급자보다 못하거나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들은 스스로 빈곤을 벗어나려는 의지를 가진 계층이므로 작지만 지속적인 지원이 있으면 쉽게 계층 사다리를 넘어 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가 공동선(共同善)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면 차상위계층을 위한 배려에도 결코 부족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대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추진하려면 복지 관련 지출이 얼마나 더 필요하게 될지 모른다. 복지란 한번 주어지면 수요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속성을 가진데다가 일단 주어진 이상 쉽게 거두어들일 수 없기 때문에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예산을 확보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올해처럼 여기는 줄이고 저기는 끼워 맞추는 식의 예산 편성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또 박 당선인이 16조원의 ‘행복기금’을 조성하여 저소득층의 만성적인 채무를 일정 부분 이상 탕감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할 때도 반드시 따져야 할 것이 있다. 누구는 혜택을 입고 누구는 배제되는 형평성의 문제와 비록 저소득층이라고는 하나 그 중에서도 소득에 따른 층간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대선 이후 최근에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바라보는 경제 분야 우선순위는 경제 성장-양극화 해소-경제 민주화 순이었다. 대다수 국민은 복지의 긴급성을 인정하면서도 무조건적인 예산 퍼붓기가 아니라 성장을 통한 과실 나누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음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새해에는 경제가 활성화되고 소득이 늘어서 우리 스스로 기꺼이 증세(增稅)를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예산 집행과정에서도 예전과는 달리 불요불급한 예산은 줄이고 아낌으로써 증대되는 복지예산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도 함께 실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