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태공 논설위원]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렸는데, 소나기가 내려 물이 불어나도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마침내 교각을 끌어안고 죽었다.

뜬금없이 미생지신(尾生之信)을 언급하는 이유는 박근혜 당선인이 약속을 지키는 것만 고집하여 무리한 대선 공약을 재검토하는 기회를 놓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최근 한 언론사가 실시한 ‘대선 공약 이행에 대한 긴급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제·재정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대선 공약 중 상당수는 수정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평가를 내놨다.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財源) 마련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시급하지 않거나 부작용이 예상되는 공약들을 인수위 시절에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공약 중에는 득표를 위한 포퓰리즘 성격의 공약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공약 개발에 관여했던 새누리당 관계자는 "군 복무 단축 등 선거 막바지에 급하게 내놓은 것도 있다"면서 "우리 지지층이 달가워하지도 않는 약속"이라고 평했다.

이런 논란이 불거지자 김용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17일 기자회견에서 대선 공약을 수정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새 정부가 시작되기 전이고, 인수위원회의 인수작업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며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실현 불가능한 공약은 수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자 서둘러 봉합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박 당선인과 인수위가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지만,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고집하는 것은 만용일 뿐이다. 고사에서도 미생(尾生)과 같은 신의는 단지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라고 평가 절하하고, 오히려 순간의 위험을 피하고 후일을 기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평한 점을 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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