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태공 논설위원] 작년 12월 12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에 대한 UN의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2087호) 채택 이후 북한은 발언 수위를 높여가면서 미국과 우리에 대해 공공연하게 3차 핵실험이라는 도발을 예고하고 있다. 미사일 발사 직후 북한의 움직임을 주시해온 한미 정보기관들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언제라도 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준비를 마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23일 유엔 안보리가 결의안을 채택한지 2시간 만에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 억제력을 포함한 자위적인 군사력을 질량적으로 확대 강화하는 임의의 물리적 대응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24일에는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우리가 계속 발사하게 될 여러 가지 위성과 장거리 로켓도, 우리가 진행할 높은 수준의 핵시험(실험)도 미국을 겨냥하게 된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면서 3차 핵실험을 사실상 예고한 바 있다.

이어서 25일에는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이름으로 한국이 유엔 제재에 직접적으로 가담하는 경우 “강력한 물리적 대응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위협했고, 26일자 노동신문은 “핵실험이 민심의 요구이므로 다른 선택은 할 수 없다”면서 핵실험 강행의지를 천명했다.

강력한 물리적 대응조치 협박

27일에도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실제적이며 강도 높은 국가적 중대조치를 취할 단호한 결심을 표명했다"며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가 진행됐으며 (해당부문 일꾼들에게) 구체적인 과업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이어 중앙통신은 “김정일 동지께서 마련해주신 자위적인 전쟁 억제력에 토대해 이제는 인민이 더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도록 경제건설에 집중하려던 우리의 노력에는 엄중한 난관이 조성됐다”며 “우리의 자주권은 오직 제 힘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철리가 다시금 확증됐다”고 덧붙였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일찌감치 북한의 3차 핵실험을 막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1993년 북핵 1차 위기 이후 20년간 때로는 대화에, 때로는 제재 쪽에 무게를 두면서 북핵을 포기시키려 했던 노력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북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우리의 대북정책은 ‘지구적 차원의 핵확산 저지’를 목표로 하는 미국의 정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대선기간 동안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 것을 전제로 남북간 신뢰구축을 이루고 궁극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끈다는 대북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장을 당연시하는 상황이라면 박 당선인이 구상해온 신뢰 프로세스는 첫걸음도 떼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마이클 그린 아시아·일본 담당 부소장은 국내 언론 기고에서 안보리 결의안 채택과 관련해 3가지를 자문(自問)하고 있다.

먼저, ‘유엔 안보리가 북한을 핵실험으로 몰아갔느냐?’ 둘째, ‘안보리 결의 채택이 남북대화를 어렵게 할 것인가?’ 또 ‘안보리 결의가 북한을 충분히 압박할 수 있는가?’이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은 우리가 안보리 제재를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상적으로는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할 것을 기대해야 맞다. 그러나 안보리 제재를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제재의 1차적 목적은 북한의 이중용도 물품 수입을 최대한 차단하는 것이다. 비핵(非核)전략이 아닌 반핵(反核)전략인 셈이다.”

또한 “예측 가능한 미래의 리스크와 위협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지 핵무기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것이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옳은 목표인 것은 맞지만 현 시점에서 그것만 강조한다면 당장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관련 리스크를 억제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한편 국가안보전략연구소는 27일 발간한 ‘2012년도 정세평가와 2013년도 전망’ 보고서에서 “북한의 대중(對中)정책은 경협 활성화와 경제원조 확보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이를 지렛대 삼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가능성에 대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대미관계는 미북 협상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경제지원 유도를 모색할 것”이라며 “대미 협상력 강화를 위해 공세적 태도를 불사하면서도 경제지원 유도 필요성을 고려하여 강온 양면전술을 병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꿔 말하면, 북한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가시화되기 전까지는 대남 비난을 자제하면서 당분간 우리측 태도를 관망하는 자세를 취할 것이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에 ‘새 정부 길들이기 전략’ 차원에서 대남 도발을 강행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거나 새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이 북한의 요구와 부합하지 않을 경우 대남도발을 불사할 것이며, 이 경우 북한은 남북관계 악화 책임을 전가하면서 대남도발 통해 우리 정부를 지속적으로 압박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국가 생존을 최우선 과제로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는 끝났다고 공언하고 핵무기 실험을 계속한다면 우리의 대북정책과 안보정책도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우리는 지금 60년 동안이나 정전상태이면서 핵무기를 보유한 상대와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세계사에 전례가 없는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려는 북한의 책략에 맞서 북의 미사일과 핵으로부터 다른 나라의 힘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자위 수단을 마련할 비상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여태까지 우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방어(MD) 체제에 대해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미국의 요구에 일정한 거리를 두어왔다. 그러나 불과 40km 남짓한 휴전선 이북에서 우리를 겨냥한 북한 장사정포에 더해 핵이 우리를 위협한다면, 한-미-일 MD 구상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심스러운 견해다.

온 나라가 경제 민주화와 복지확대라는 경제 담론에 함몰되고, 정권교체에 따른 어수선한 분위기에 더해 새 정부 출범 때까지 청문회라는 공식적 편가르기식 이전투구에 빠질 것이 뻔한 상황에서 누가 국가의 생존 문제를 직시하고 대비하고 있는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례없는 차원의 안보 위협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당장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차기 정부 조직 개편에 안보 강화를 위한 노력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박 당선인도 국가 생존 전략이 최우선 과제임을 먼저 강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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