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태공 논설위원]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재계의 우려 속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지난 21일 플라자호텔에서 제52회 정기총회를 열고, 제34대 회장에 허창수 GS그룹 회장을 재선임하고 상근부회장으로 이승철 전무를 승진시켜 허창수 회장 2기 출범식을 알렸다.

국내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지난 대선 때부터 ‘경제민주화’ 요구가 봇물 터지듯 나온데다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과거 어느 때보다 민생 안정에 주력할 것이라는 예측에 따라 전경련이 과연 과거의 입장이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제개발 초기에는 (전경련이) 재계의 구심점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기업이 개별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친목단체 수준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전경련 회장이라는 역할도 같은 맥락에서 중량감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지적이 따른다. 실제로 전경련 회장직을 누구도 선뜻 맡으려 하지 않아서 정기총회 불과 사흘 전에야 허 회장의 재추대가 가능하기도 했다.

허창수 회장 1기 때의 전경련은 상생경제를 요구하는 정부나 사회의 분위기와 달리 재계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기에 급급했다는 일각의 평가가 있다. 주요 경제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전경련은 국가적 시각보다 재계의 자체 방어논리에 매달리는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때 전경련이 대기업의 이해만 대변하는 이기적 이익 집단이라는 인식으로 정치권에서 ‘전경련 해체론’까지 등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새 정부에서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면 정부는 정책을 잘 펴고, 기업은 투자를 통해 일자리 창출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특히 정부와 재계의 원활한 소통을 전제로 2기 허 회장호(號)의 강력한 리더십을 주문했다.

따라서 연임을 수락한 허 회장이 이승철 전무를 상근 부회장으로 선임한 대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재벌총수가 맡는 전경련 회장은 어차피 상징적인 ‘재계의 얼굴’일 뿐, 실질적 업무는 상근부회장을 정점으로 조직된 사무국의 몫이다. 신임 이승철 부회장은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출신으로 기획본부장, 경제조사본부장을 거쳐 2007년 만 48세의 나이에 일약 전경련 전무로 승진하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런 그가 6년 만에 사무국 출신 상근부회장이 된 것이다.

이 부회장은 탄탄한 경제 논리로 무장하고 누구도 쉽게 반박할 수 없는 말솜씨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면서 재계의 대표적인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동안 경제민주화, 출자총액규제, 순환출자규제 등 재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부의 규제 행정을 비판해온 재계의 변호인이었다. 특히 지난 대선 때 경제민주화 목소리가 높이면서 정치권의 압박해올 때도 그는 피하지 않고 각 방송사 토론장에서 재계의 입장을 대변해 왔다.

이 부회장은 총회에서 “경제민주화가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빠졌다고 해도 국민들 마음속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전경련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여전히 화두라고 생각하고 대응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편 전경련은 이날 정기총회에서 전경련 변화의 첫 시도라고 할 ‘기업경영헌장’을 발빠르게 채택하는 민첩함을 보였다. 시대적 과제가 된 경제민주화와 사회통합 흐름에 맞춰 상생과 기업윤리를 추구하고 국민과 함께 하겠다는 일종의 결의문인 셈이다.

헌장은 “세계에서 유래 없는 고도성장을 이뤘지만 우리 사회에는 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아픔을 겪고 있는 구성원들이 존재한다”며 “개인의 행복과 나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한 초석”임을 서문에서 밝히고, ▲경제성장을 통한 국민행복 증진 ▲윤리경영 실천 ▲건강한 기업생태계 구현 ▲소비자 권익 증진 ▲근로자 권익 보호 ▲사회적 문제해결 선도 ▲실천 다짐 등 7대 원칙과 21개 세부지침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전경련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이번 헌장이 지난 1996년 전경련이 발표한 ‘기업윤리헌장’을 베껴놓은 듯하기 때문이다. 대(對)중소기업 협력에 관한 내용도 17년 전 헌장과 다를 바 없다.
이 부회장은 기업경영헌장이 구체적 실행방안과 규범 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전경련이 성격상 기업들을 강제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계속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경련과 재계가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전경련의 이미지 변화를 위한 노력과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앞으로 2년 동안 전경련을 이끌 허창수호(號) 2기는 저성장 시대를 안을 수 있는 핵심 아젠다 발굴과 새 정부 경제팀과의 호혜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과제를 이루어야 한다. “500개 회원사보다 5000만 국민을 대변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다짐과 같이 새 시대의 바람에 부응함으로써 과거의 위상을 되찾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전경련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전경련은 한국 경제의 태동기인 1961년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올바른 경제정책을 구현하고 우리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고자 임의단체인 ‘한국경제인협회’로 발족했다. 그리고 1968년 사단법인 전국경제인연합회로 정식 출범하여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 4대 경제단체의 하나로 꼽히는데, 회원은 제조업·무역·금융·건설 등 전국적인 업종별 단체와 우리나라 대표적 대기업 등 500여 회원을 포함하고 있다.

대기업이 주요 회원으로 구성된 전경련은 다른 단체들과 달리 인사와 예산이 독립된 순수 민간단체로서 대기업의 정보교환, 업무협력, 친기업환경 조성 등을 추구하며, 국내외 각종 경제문제에 대한 조사연구, 주요 경제현안에 관한 대정부 정책건의, 외국경제단체 및 국제기구와의 교류협력, 자유시장경제 이념의 전파와 사회공헌 등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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