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최원일 논설실장 ] 드디어 ‘박근혜 시대’가 펼쳐졌다. 온 국민과 전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어제 취임식을 가졌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 경제 부흥을 이루고, 국민이 행복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선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성장으로 대변되는 '한강의 기적'을 무려 4차례에 걸쳐 언급한 것이다. 고성장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국민적 열망을 되새기면서 경제 도약에 힘쓰겠다는 강한 의지로 풀이된다.

한강의 기적은 쉽게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뼈를 깎는 국민들의 아픔과 고통과 인내가 있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고 사심 없이 국정을 이끈 지도자가 함께 했다. 개발연대 초기에 있은 박정희대통령의 서독방문이 불씨가 됐다. 시대 순으로 독일파견 광부와 간호사들1963~1977), 베트남전선에 투입된 참전용사들(1965~1973), 중동건설현장의 근로자들70~80년대), 이분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달러를 벌어들여 종자돈 역할을 훌륭히 해낸 것이다.

1964년 12월10일 박정희대통령 내외는 서독의 수도 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함보른 광산으로 출발했다. 박대통령과 뤼브케 서독 대통령이 한 차에 타고, 육영수 여사는 뤼브케 대통령 부인과 바로 뒤차에 탔다.

박대통령 일행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광부들은 양복차림 간호사들은 색동저고리를 입고 좌우에 늘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광산악대가 주악을 울리는 가운데 대통령은 기다리고 있던 광부, 간호사들과 손을 잡았다. 대통령보다 10여m뒤에서 육 여사는 간호사들에게 일일이 말을 건넸다. “가족들에게서는 연락이 잘 옵니까” “일은 고달프지 않습니까“

육 여사가 세 번째 간호사와 악수를 하면서 “고향이…“라며 말을 건넸다. 아마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려고 했던 것 같다. 육 여사의 입에서 ”고향”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 간호사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이 신호가 돼서 간호사, 광부 할 것 없이 울기 시작했다. 음악을 연주하던 광산 악대도 꺽꺽거리며 울었다. 행사장인 강당 중간쯤에 가 있던 박대통령도 뒤를 돌아보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간호사들에게 둘러싸인 육 여사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주저앉으려 했다. 주위에서 간신히 그를 부축했다. 대통령을 따라 강당 안으로 먼저 들어갔던 기자들은 이 광경을 취재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사진을 찍던 사진기자들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함께 울었다. 취재기자들도 주저앉아 통곡했다. 독일인 광산회사 사장도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10분 이상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박대통령 내외는 단상에 올랐다. 광부들로 구성된 악대가 애국가를 연주했다. 박대통령 선창으로 시작된 애국가는 뒤로 갈수록 제대로 이어지지를 못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애국가가 후렴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합창은 흐느낌으로 변했다. 마지막 소절인 “대한 사람 대한으로“에 이르러서는 가사가 들리지 않았다. 함보른 광산회사 영업부장이 차분하게 환영사를 읽으면서 식장의 분위기가 겨우 진정됐다.

박대통령이 연단으로 올라갔다. 그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코를 푼 다음 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 밑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서독 정부의 초청으로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에 와 일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제일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받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다시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원고를 덮어 버린 박 대통령은 자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광원 여러분, 간호원 여러분. 모국의 가족이나 고향 땅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 생각되지만, 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 먼 이국에 찾아왔던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흐느낌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대통령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다가 결국 울고 말았다. 강당 안은 눈물바다가 됐다.
대통령은 광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파고다 담배 500갑을 선물로 전했다. 30분 예정으로 함보른 광산에 들렀지만, 강당에서 행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대통령은 곧바로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강당 밖으로 나온 대통령 일행은 광부들 숙소를 돌아 봤다.

우리 광부들의 얼굴과 팔·다리 등에는 상처투성이였다. 채탄 작업 중 부러진 드릴이 튀어 오르는 바람에 입은 상처들이었다. “지하 1000m 아래서 채탄 작업을 한후 갱위로 올라오면 타는 목을 달래기 위해 시원한 맥주한잔 생각이 간절하지만 광부들은 그 돈도 아껴 본국으로 송금한다”고 들려주었다. 안 쓰고 아껴 국내로 보낸 이런 돈들이 모여 한강의 기적을 이룬 씨앗이 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 내외가 함보른 광산을 떠나려는데 광부들이 또다시 몰려들었다. 갓 막장에서 나와 검은 탄가루를 뒤집어 쓴 작업복 차림의 한국인 광부들이었다. 그들이 대통령 일행을 태운 차를 둘러싸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차 안의 대통령이 계속 울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았던 뤼브케 서독 대통령은 “울지 마세요. 우리가 도와줄 테니 울지 마세요”라며 박 대통령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본의 숙소에 도착한 대통령 내외는 그날 하도 울어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는 당시 수행기자들의 얘기다.

이 일은 1964년 12월11일자 조간신문 1면에 「後孫(후손)위해 繁榮(번영)의 터전을」 - 모두 눈물 적시며 感激(감격)의 한때… 라는 큰 제목으로 보도됐다. 그때 박대통령이 광부, 간호사들과 함께 흘린 눈물이 바로 ‘한강의 기적’이자 조국 근대화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14년간 7만9000여 명의 광부와 1만여 명의 간호사들이 독일로 파송됐다. 한국이 경제개발을 위해 서독에서 최초로 들여온 1억5000만 마르크의 차관은 바로 이들 광부와 간호사들의 급여를 담보로 받은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독일 정부 차관은 우리나라에 대한 공공차관이 중단된 1982년까지 총 5억9000만 마르크에 이르렀다.

독일에 돈을 벌러 간 광부와 간호사들의 희생은 적지 않았다.

파독 기간중 광부 65명, 간호사 44명, 기능공 8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조국근대화의 첫 번째공로자다. 두 번째가 월남전 참전군인들이다. 세 번째가 중동진출 기술자들이다.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10대 경제대국이 될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박 근혜 시대’를 맞아 또다시 한강의 기적을 이루겠다는 취임사에 거는 기대가 크다. 우리가 다시 뭉쳐 전진하면 꼭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자. 중소기업 대기업 할 것 없이 기업가정신으로 우뚝 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급선무다. 우리국민들은 큰일이 터지면 뚤뚤 뭉치는 특성이 있다. 그러한 장점을 살리는 건 지도자가 할 일이다. 과거 선친이 하다가 본의 아니게 멈추인 선진국을 향한 깃발을 다시 이어받은 따님이 꼭 성취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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