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최원일 논설실장] 평범한 사람들이 정년퇴직하면 그 뒤 생활은? 전문직종사자라면 수준을 낮춰 다른 직장을 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부모 잘 만나 물려받은 재산이 많다면 예외가 될 것이다. 또 사업에 성공해 재산을 모았거나 알뜰히 살림을 일궈 여유가 있다면 다행이다.

그렇지만 우리주변의 대부분 은퇴자들은 젊은 시절 그달 벌어 현상유지하기에 급급했다. 결혼해 집 장만하고 자식들 가르치는 게 꿈이자 낙이었다. 노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은퇴 후에도 뭐든 일거리를 찾아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변변한 직장은 어렵다 해도 재수가 좋으면 경비직이라도 연결된다. 여의치 못하면 살고있는 지역의 자치단체가 벌이는 공공근로나 노인일자리 사업에 눈을 돌린다. 그 자리도 마냥 오라고 비어있지는 않다. 지원자가 많아 2대1이상의 경쟁을 치러야 차지할 수 있다. 이것 저것 알아봐도 안될 땐 배낭매고 체력단련에 나선다. 이것이 우리주변 대다수 은퇴자들의 현주소다.

일반은 그렇다 치고 힘 있는 공직자들이 퇴직하면 어디로 갈까. 장관들 인사청문회를 보면 고위직 출신들은 법무법인이나 특정업체 고문으로 추대된다. 단기간에 엄청난 보수를 받는다. 전에 일하던 곳을 상대로 로비를 벌여 고문역할을 잘해낸다. 후배공무원들은 과거 모시던 상사를 극진히 대접한다. 주문받은 업무도 산틋하게 잘 처리해 주는 것은 물론이다. 이른바 전관예우다. 법무법인이나 재벌그룹 고문하다 어느 순간 장관 또는 차관으로 오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곤란 겪지 않으려면 보험 드는 셈치고 잘 모실 수 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모습이 장관후보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닌 것 같다. 이른바 힘 있는 기관의 5급 이상 퇴직공무원들도 많은 수가 대기업에 재취업해서 일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근 새행정안전부가 국회에 제출한 '고위공무원 재취업 현황'에서 확인된 사항이다.

국방부 200여명을 비롯하여 경찰청-금감원-국세청-검찰청-대통령실-국정원 등 기관출신 공직자들이 한 기관에서 150명, 적게는 50여명이 대기업에 취업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전자에 가장 많이 취업했다. 이어 현대해상화재보험-KT-한국항공우주산업-LIG넥스원 -대림산업-삼성탈레스-국민은행-현대건설 순으로 많이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상기업들이 대부분 삼성-현대-LG 등 다 내노라 하는 재벌기업들이다.

은퇴자들이 일단 퇴직 후 다시 일하는 것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권장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가게나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당사자가 공직 재직시 해당 대기업에 업무상 편의를 제공한 댓가로 얻은 자리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공직자들이 평소 엄격한 직업윤리를 외면하고 특정업체를 봐준다면 이는 보통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국고가 축나거나 국민이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얘기다.

퇴직한 공무원이 많아 재취업한 인원도 많을 수 있는 기관인 국방부와 경찰청은 예외로 치자. 그렇지만 평소 수행업무로 볼 때 금감원·국세청·검찰청 같은 곳은 업무성격상 공정성을 잃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공직윤리법은 제17조 1항에 퇴직일로부터 2년간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취업은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업무연관성이 높을 수 있는 기업에 재취업한 사례가 많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업무수행에 임하는 공직자들의 각성이다. 나중 일을 생각해서 원칙에 어긋난 행동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울러 관계법을 개정해 이런 일이 발생치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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