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태공 논설위원] 요즘처럼 과학적 전문 지식을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에 웬 인문학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인문학 소양은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절대적 지식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함께 고양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 안철수 전 교수는 귀국길에 영화 <링컨>과 <레미제라블>을 언급하면서 링컨 대통령의 설득과 타협의 정치, 민생정치를 정치적 좌표로 삼겠다는 뜻을 비쳤다. 대선 때처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부정에서 찾지 않겠다는 뜻을 에둘러 말한 듯하다. 그리고 귀국 비행기 안에서 최장집 교수의 저서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을 펴들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노력이 실체없이 말로만 ‘새 정치’를 내세웠던 그의 시각을 교정할 수 있는 계기는 될지언정 50여년 체득한 자의식을 바꾸고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만들기까지는 어렵다고 보인다.

그것은 그가 노원병 출마에 대해 “신중히 결정하고 바로 알렸다”라고 말한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정치에는 명분이 반드시 따르는데 그렇지 못함으로써 민주당이나 진보정의당의 비난은 물론 지역구민들로부터 철새로 오해받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정치를 하려면 자신의 신념을 세우고, 이념을 확정한 다음 정책을 구체화하여 내놓음으로써 자신의 정치 참여를 정당화해야 하는데 여전히 그것이 없다.

연고도 없는 노원구에서 자신의 인기만으로 국회의원이 된다고 그가 전국구 정치인이 되며, 또 새 정치를 위한 세력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유치한 발상일 뿐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깡통’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는 영화 <미저리(Misery)>에서처럼 광신적인 스토커의 침대에 묶여서(지지자들의 환호에 사로잡혀) 자유를 박탈당한(새 정치를 펼 수 없는) 채 애완동물(얼굴마담)로 전락하고 마는 미저러블(miserable)한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비유도 가능하다.

#2. 나꼼수 멤버였던 정봉주 전 의원이 한 종편에 출연하여 스스로를 희화화시키는 소극(笑劇)을 연출했다. 그는 1년 동안 대중과 격리된 영어(囹圄) 생활을 통해 반성도 하면서 자랑할 만큼 몸짱이 되었노라고 눙쳤지만 여전히 제버릇은 못 고친 듯하다. 그는 막말의 대가가 아니라 유가(儒家)의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안다며, 그것을 4단론(四端論)으로 풀이까지 하면서 어설픈 교양을 자랑했다.

하지만 진행자의 정치인 최고의 덕목은 ‘진솔함’이란 발언에 그것이 자신을 겨냥한 비수라는 점은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변명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알 만한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이 또한 교양이 아닌 인문학 소양의 결핍에서 비롯된 일이다.

#3. 반가운 소식도 있다. 삼성이 상반기 3급(대졸) 신입사원 공채에 인문계 출신을 뽑아 소프트웨어 인재로 키우겠다고 한다. 인문계 전공자를 대상으로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CSA)’ 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인문학적 소양과 기술을 함께 갖춘 창조적 인재를 앞세워 소프트웨어 혁신을 일궈내겠다는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는 금언(金言)의 정신이다.

전문가들은 기술적 전공지식이 없는 아마추어들이 단기간 교육으로 무슨 성과를 내겠느냐며 평가절하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인문학도라 하더라도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능은 이미 익히고 있기 때문에 전문기술인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보완적인 기능이나 전문가로서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신선한 발상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우주선에 철학자가 스페셜리스트로 탑승하여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와 현상을 해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역할과 마찬가지이다.

선발 인원은 올해 200명이지만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인문학 소양을 바탕으로 현대문명의 절정에서 인간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IT기술이 탄생하리라는 것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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