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태공 논설위원] 안철수 전 대선 예비후보가 4ㆍ24 재보선 노원병에 전격 출마하면서 자칫 무덤덤할 수도 있는 재보선이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대선을 지켜본 국민들은 그의 당락이 관심사지만 여야 정치권의 셈법은 그의 국회 진출 여부에 따라 복잡해질 것이다. 안 예비후보를 아끼는 마음에서 이번 출마에 대한 사사로운 평가와 주문을 남기고자 한다.

첫째, 지천명(知天命)을 무시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현 박원순 시장에게 후보를 양보하는 아름다운(?) 결정을 내릴 당시 안철수는 나이 50을 바라보고 있었고, 작년 대선 때는 50을 갓 넘긴 때였다. 우리 사회에서 50세가 가지는 의미는 중요하다. 소위 천명(天命,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가 의사, 사업가, 교수로 변신할 때마다 숙고를 거쳤고 또 성공했다고 주장하지만 정치인이 되겠다는 결심은 천명을 거스른 듯하다.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도 아닌데 실체가 없는 소위 ‘안철수 현상’에 취하여 정치인의 길로 선뜻 나선 것은 무리였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정치인이 세상을 변혁할 수는 없는 법이다. 예수, 석가, 공자를 보면 답이 나온다. 제자들을 기르고 그 제자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그 제자의 제자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실 안철수는 사회의 관심 밖이었던 고민하는 젊은이들을 상대로 그들을 어루만져주는 훌륭한 멘토로 역할하면서 서울대 융합과학대학원 원장이라는 교수로서의 직분을 천명으로 여겨야만 했다. 대선에 도전하면서 ‘돌아갈 다리를 불태웠다’고 선언했지만 결국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자진사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그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을 무시했기에 그는 안하무인(安下無人)이라고 불려도 마땅하다.

둘째, 명분이 없다.

정치가 필요로 하는 최고의 덕은 ‘정자정야(政者正也)’라는 공자의 단언에서 보다시피 ‘올바름’이라는 명분이다. 대선 투표 후 결과도 보기 전에 총총히 출국하는 모습에서 투정을 부리는 듯한 치기(稚氣)를 보였다. 그리고 노회찬 의원의 의원직 상실을 위로하는 듯한 전화 한 통화 끝에 덥석 노원병에 깃발을 꽂는 낯 두꺼움을 드러내고 말았다.

무엇보다 이번에도 ‘새 정치’는 없었다. 그는 “높은 기대감에 부담감을 느낀다”면서 “새 정치라는 게 지금까지 없었던 것,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정말 정치가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을 하자는 게 새 정치”라는 추상적 레토릭만 옹색하게 언급했다. 하지만 판세가 여의치 않다고 느껴선지 조직선거 열세를 거론하며 대선 캠프를 도왔던 자원봉사자 전원에게 자성과 사과를 담은 e메일을 보내면서 ‘친구 추천’을 부탁하는 다급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재보선을 기획하고 돕는 참모가 없지는 않겠지만 또 한번 안하무인(安下無人)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목과 신념의 결핍이다.

안철수는 발로 뛰는 선거운동 과정에 “상계동 주민분들을 만나면서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치를 했다면 실수를 많이 할 뻔했다.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주민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여론조사에서는 항상 지지율이 높지만 실체가 없는 것을 두고 평론가들은 ‘안철수 현상’이라고 평했다. 안철수 대선 캠프 ‘진심캠프’의 국민소통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이동주 전 위원은 한 월간지 기고에서 그가 ‘아이돌(idol) 스타’인 줄 착각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려면 신념과 철학의 결핍은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현상에 그칠 듯하자 야권의 단골메뉴인 ‘단일화’가 솔솔 냄새를 피우기 시작한다. 안철수는 노원병에 뛰어들 때만 해도 “이번 선거에서 또 단일화를 앞세운다면 정치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잘 담아내기 힘들 것”이라며 정면돌파 의지를 보였지만 곧 “같은 뜻을 가진 분끼리 서로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는 것은 얼마든지 환영한다”고 단일화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안철수 예비후보에게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돌풍을 몰고 왔던 로스 페로의 사례를 돌아볼 것을 권한다. 진흙탕 싸움이라고 워싱턴 정가를 싸잡아 비판함으로써 혜성처럼 등장했던 페로의 명멸은 안철수의 앞길을 제시하는 듯하다. 정치권에 염증을 가진 유권자들을 속 시원하게 만들고 혜성같이 등장할 수는 있어도 그 꿈은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안철수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자신만의 재능을 살려 사회에 헌신할 수 있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나무꾼과 선녀’의 설화를 빌리자면, 천상의 선녀는 아무리 따뜻한 지상의 사랑을 받더라도 격에 맞지 않는다. 선녀는 아이가 둘이었기 때문에 천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이가 셋이 되면 떠밀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