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vs 유통사…공생이냐 독자노선이냐

▲ 서점에서 책을 살피고 있는 시민들. 최근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찾고 있는 고객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일간투데이 인상민 박성은 기자] 전자책 시장에도 ‘봄’은 올까. 한국은 전 세계 어느 곳보다도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가 빠르게 보급된 나라다. 작년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 수는 3000만명. 국민 10명 중 6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꼴이다. 또한 아이패드와 넥서스같은 디지털디바이스의 활발한 보급도 전자책이 뿌리내릴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비교했을 때 국내 전자책 시장의 성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를 면치 못하고 있다. 분명 전자책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훌륭한 토양이라는 분석에도 불구하고 전자책의 비중은 전체 도서시장의 2%에 못미치고 있는 것이다. 출판계와 대형서점 모두 미래의 도서시장이 전자책을 중심으로 개편될 것이라는 점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성장이 더딘 편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콘텐츠의 부족. 미국의 경우 신간의 95%가 전자책으로 동시 출간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신간은 둘째치더라도 복제를 방지하는 디지털 저작권 코드가 출판사 또는 유통사마다 모두 달라 이마저도 접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또한 유통사마다 보유하고 있는 장서도 종이책에 비해 전자책은 그 수마저 매우 적다. 다시 말해 독자가 보고싶은 도서를 전자책으로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이는 실질적인 시장을 키우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도 현재 전자책 시장이 커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콘텐츠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전체적인 독서인구가 감소한 것도 전자책 시장의 성장저해 요소로 꼽히고 있다.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12년 한해 2인 가구 기준 도서 구입비는 1만9000원으로 처음으로 2만원대 밑으로 떨어졌다. 이는 전년에 비해서 7.5% 하락한 수치이고 2003년과 비교했을 때 28% 감소한 수치다. 전반적으로 독서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비자에게 심리적으로 비싼 가격도 문제다. 소비자들은 종이책과 달리 책장에 꽂아두고 볼 수 없는 전자책을(책을 미관상 수집대상로 보는 독자도 많다) 종이책과 비슷한 가격에 구매하는 것을 꺼려한다. 종이책보다 저렴해야 된다는 소비자의 인식은 그보다 10~20% 할인된 전자책 가격에도 구매를 망설이는 것이다.

전자책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출판업계와 유통사 모두 이러한 문제점들을 잘 인식하고 있다.

▲ 교보문고 회원제 전자책서비스 샘(Sam)의 디바이스를 사용해보고 있는 고객들의 모습. 샘은 출시 40일만에 1만3000대 판매를 돌파했다.(사진제공=교보문고)

교보문고는 전자책 시장 자체를 키우겠다며 지난 2월20일 국내 최초로 회원제 전자책 서비스 ‘샘(sam)’을 선보였다. ‘샘’은 1년 회원가입을 통해 기본요금 1만5000원으로 매월 5권을 6개월간 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구매’가 아닌 ‘대여’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기존 전자책 독자들에게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즉 확 낮춘 가격으로 전자책 접근성을 대폭 상향시키는 대신 '판매'가 아닌 '대여'로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 달 일정한 권수를 제공해 사람들의 독서를 유도하고 권 당 3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대여함으로서 전자책 시장과 독서인구를 늘리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는 것이다.

이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보문고는 ‘샘’ 서비스가 출시 40일만에 1만3000대를 돌파했다고 4일 전했다. 지난해 9월 출시한 크레마 단말기의 누적판매량인 1만7000대와 비교했을 때 놀라운 수치라 볼 수 있다. 한 달 일정 수량 전자책을 읽는 회원수도 1만 명을 돌파했다. 콘텐츠 역시 20일 출시 당시 1만7000종에서 4월 현재 2만1000종으로 대폭 확대됐다.

이런 저렴한 전자책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전략은 최근 출판계 내에서도 불고 있다. 국내 대형 출판사인 열린책들이 얼마전 세계문학전집 전부를 149.99달러(약 16만원), 권당 800원에 판매했다. 애플 전용 스마트폰·태블릿PC용 ‘세계문학’ 앱은 이례적으로 출시 나흘 만에 2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열린 책들은 앞으로 앱을 바탕으로 한 전자책 출판 시스템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행보에 출판쪽 관계자들은 적잖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출판협회는 지난달 27일 성명을 통해 샘 서비스의 ‘대여’가 전자책 가격의 신뢰도를 상실시키고 도서정가제를 무력화하는데 앞장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힌 것. 즉 전자책 시장의 확장을 단지 '가격하락을 통한 수요자 확보'로 이루겠다는 생각은 결국 출판계 전체의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대형출판사의 전집 저가 정책에 대해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한마디로 (전자책 시장의) 판을 깨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전자책 시장을 선점하겠다며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고전 등을 덤핑으로 내놓는 건 (출판업계) 모두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출판사와 유통사, 공생이냐 독자생존이냐

출판사들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전자책사업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전자출판산업은 현재 종이책 시장의 축소와 유통문제 해결을 위한 출판생태계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겪고 있는 시기다. 출판사와 유통사는 서로 공존하는 관계다. 하지만 도서정가제와 맞물려 전자책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 한국출판인회의 8대 회장 박은주(56) 김영사 대표. (사진제공=뉴시스)

교보문고가 내놓은 회원제 전자책 서비스 '샘'은 구매가 아닌 대여를 도입한 새로운 형태의 사업이라는 점에서 출판업계의 반발이 심하다. 한국출판인회의(회장 박은주 김영사 대표)는 지난달 27일 추가 성명서를 발표하며 샘은 콘텐츠의 양이나 질에서 부족하며 전자책 이용에 따른 가격에 불만이 있고 그에 따른 수익률이 미미하다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다시말해 도서정가제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전자출판 시장질서를 교란하며 법률상으로도 대여를 기반으로 한 회원제 서비스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환기시킨 것이다.

시공사 이북사업의 한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전자책사업이 종이책 시장과는 별도로 투자하고 성장하는 시장이라는 데는 공감한다. 현재 단권형태의 이북은 계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며 "다만 대여제나 회원제 서비스는 기존과 다른 형태의 사업이기 때문에 저자와의 문제도 있고 내부적으로 점검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하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교보문고 측은 구매가 아닌 대여의 개념이기 때문에 도서정가제와는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교보문고 허정도 대표는 지난 2월20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샘 출시에 맞춰 “샘은 전자책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 독서 인구를 늘리는 데 목적이 있다”며 “위기에 빠진 종이책 시장을 견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허 대표는 샘이 독자와 출판사, 서점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이라고 확신했다.

웅진출판, 21세기북스, 위즈덤하우스, 자음과모음 등이 교보의 대표적인 협력사다. 21세기북스 관계자는 “출판사에서도 다각도로 전자책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교보문고와 조건이 맞아 전자책 콘텐츠를 제공하게 된 것"이라며 "작년 구글과의 전자책 사업에 참여한 것도 시장확보의 한 방편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출판사와 유통사 양측 모두는 이북사업이 앞으로 출판산업의 한 축을 이룬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만 강조하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상생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전자책 시장에는 정답이 없다. 현재 변화 중인 시장환경에 맞춰 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며 출판사와 유통사 간의 공생관계를 강조했다.

올바른 전자출판 정책과 건강한 유통체계 확립, 합리적인 수익모델을 구축해 저자, 출판사, 유통업체 모두가 안정적으로 출판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시기다.

▲ 문학동네는 전자책 사업이 커가는데는 동감하지만 출판사, 유통사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도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북(e-book)시장이 가파른 성장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하지만 아직 출판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출판사들도 전자책 시장이 신장할 것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워낙 여건이 좋지 않아 투자할 여력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문학동네 이북사업부 최종수 실장은 “출판사도 예전과 달리 이북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신간은 작가와 협의를 거쳐 종이책과 동시에 출간을 준비하고 예전에 많이 사랑해 주신 책들을 이북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종이책이나 이북의 저자 인세수준은 거의 동일하다. 출판사 입장에선 수익률이 높아도 똑같은 지출(인세)이 있어 유통사들의 저가정책에 마냥 손을 들고 환영할 수 없다”고 말해 전자책 가격에 불만을 표시했다.

이어 그는 “예를 들어 이북 권당 판매가가 3000원일 경우 출판사에 지급되는 금액이 대략 60% 수준인 1800원이 들어오는데 이때 출판사는 인세로 종이책(정가 1만원)과 같은 10%의 1000원을 저자에게 지급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선 출판사로서는 가격이 맞는 책들만 유통사에 공급할 수 밖에 없다. 출판사와의 충분한 협의 과정없이 기껏 공문 몇장으로 시행되는 유통사의 이북사업은 출판사들의 불신과 함께 저자 인세, 계약문제 등으로 시장은 커지지 않고 지지부진할 것이다”라고 전자책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최 실장은 “이러한 상황에서 아마존닷컴같은 자본이 충분한 초대형 온라인 유통업체가 한국에 진출한다면 그들이 어떤 전략을 들고 올지 출판사나 유통업체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라고 말을 맺었다.

 

▲ 교보문고 회원제 e-book, 샘(Sam) (사진제공=뉴시스)
며칠 전 광화문에서 만난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진영균씨는 “‘샘’에서 ‘습관의 힘’이 갑자기 빠졌다”는 질문에 “출판사 측에서 계약을 끊겠다라고 얘기하면 계약은 자유롭다. 그래서 새롭게 들어오는 것과 빠지는 순환이 생긴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전자책 시장에 대해 “전자책 시장에서 주도권은 출판사가 쥐고 있다. 항간에는 교보문고가 유통파워를 이용한다고 하지만 전자책 시장에서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거래 진행과정에 있는 책들이 많다. 몇 몇 출판사의 부정적인 시각이 있지만 ‘샘’ 쪽으로 넘어와서 생기는 수익, 즉 구체적인 결과치를 보여드리면 많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출판사에서 ‘샘’을 향한 우려에 시각에 많다. 자칫 잘못하다가 종이책 시장이 전자책에 잠식될 수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진영균씨는 “예를들어 현재 이북에서 1위 중인 유시민 씨의 ‘어떻게 살 것인가’의 경우 전자책으로 먼저 출판이 됐다”고 말하며 “하지만 현재 종이책 순위에서도 2~3위라는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즉 종이책 인구와 전자책 인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며 전자책이 종이책 시장을 잠식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닌 함께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보였다.

현재 ‘샘’ 베스트 콘텐츠는 장르소설보다는 문학·인문·자기계발서 등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샘에서 제공되고 있는 콘텐츠 역시 지난 2월 20일 출시 당일 1만7000종에서 4월 현재 2만1000종으로 크게 늘었고, 참여 출판사도 출시 당시 230개 사에서 400개 사로 늘었다.

교보문고 안병현 디지털사업운영팀장은 “국내 최초로 실시한 교보문고 회원제 서비스 '샘'이 기대 이상의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관심을 보이는 출판사들이 늘고 있다”며 “출판사들의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독자들의 가입도 늘어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면서 출판사-독자-서점이 모두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향후 전망을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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