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태공 논설위원] 4·24 재보궐선거가 일반의 예상대로 이변없이 끝났다. 이번에도 전패한 민주통합당의 앞날은 암울하기만 하다. 그동안 숱한 논의와 처방에도 불구하고 백약이 무효인 식물정당에서 후보도 내지 못하고 승리하지도 못하는 불임정당이란 비아냥거림을 듣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5·4 전당대회를 통해 어떤 변신의 모습을 보일지가 관심사다.

위기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당 스스로가 당의 현 주소를 정확하게 아는 일에서 출발한다. 사실 민주당의 현실은 민주당을 비판하던 여당이나 국민들은 물론 민주당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다. 민주당만 스스로 인정하기를 거부했었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하다.

◇지각 대선평가서

민주당 대선평가위원회(위원장 한상진 서울대 교수)가 78일간의 연구 끝에 지난 9일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무려 364쪽의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는 먼저 민주당의 지난 15년을 ‘혼돈과 방황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대선 패배에 대해서는 사전 준비와 전략기획이 미흡했고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의 책임의식과 리더십이 취약했으며, 계파정치로 인해 당이 분열됐고, 당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으며, 문재인 후보의 정치역량과 결단력이 유약했다는 등의 원인을 백화점식으로 지적했다.

특이한 점은 핵심 당원 600여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대선 패배 책임이 있는 주요 인사의 정치적 책임을 점수화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대해 일부 인사들은 “특정인을 겨냥한 마녀사냥식 평가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친노계로 분류되는 배우 명계남씨는 보고서에 반발해 탈당을 선언했다. 다만 당사자인 문재인 의원이 모두 자신의 책임이라고 자인한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당명 및 강령 개편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당명에서 ‘통합’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성곤 전대준비위원장은 당명 변경안을 오는 5·4 전당대회에서 최종 확정하기로 했다. 변경안이 통과되면 민주당은 2011년 12월 민주통합당이 된 지 1년5개월 만에 다시 옛 이름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민주통합당이라는 당명은 야권통합 정신을 상징한다. 이제 와서 통합의 의미를 부정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또 준비위는 강령과 정강·정책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한·미 FTA 재검토’ 조항을 없애고, 보편적 복지를 ‘복지국가의 완성’으로 수정하며,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을 새로 넣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진보의 의미를 퇴색하게 만드는 ‘지나친 우(右)클릭’이란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변신의 핵심은 진정성이다.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을 넣는 데에 그치지 말고 북한인권법 제정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민주당은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규탄하는 국회 결의안에 반대한 바 있다. 선거와는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지켜야 할 민주적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실종된 당원중심주의

민주당은 그동안 당원 수 210만명, 당비를 내는 권리 당원이 17만명을 넘는다고 자랑해 왔다. 그러나 조사 결과 일반당비 1000원을 한번이라도 낸 당원 수는 8만9700명, 1년간 당비를 낸 당원은 4만2000명에 불과했다. 전체 당원 중 90% 가량은 당비도 안 내고 연락조차 안 되는 유령당원이었다.

정당의 주인은 자발적으로 당비를 내고 활동하는 당원들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당원을 유지하고 당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외부 세력과 연대해 선거에서 이기고 보자는 데만 관심을 쏟았다. 국민 참여를 늘린다는 명분으로 당원보다 국민참여선거인단에 훨씬 더 많은 몫을 줬다. “당비 내고 고생한 당원들을 홀대하느냐”는 불만이 쏟아졌지만 당 지도부는 번번이 무시했다. 이 과정에서 진성 당원들은 빠져나갔고 주인 없는 껍데기 정당만 남았다.

◇독약이 된 후보단일화

민주당은 2002년 대선의 후보단일화(노무현)와 2010년 지방선거의 야권연대에 대한 달콤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무소속)와 후보단일화를 제안했다가 경선에 지는 바람에 후보 자리를 넘겨줬고, 지난해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도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 결과는 패배로 끝이 났다.

스스로 쇄신하는 노력보다 정치공학적 단일화와 연대에만 몰두하다 보니 당의 존재감은 줄어들고, 존재감이 줄어드니 단일화와 연대에 더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을 불러와 민주당의 지지 기반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이다.

혁명은 개혁보다 더 힘들다는 말이 있다. 변화를 바란다면서도 민주당 내에는 여전히 이런 세력과 체질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번 전당대회만큼은 구태를 버리고 민주당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전기(轉機)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렇지 못하면 민주당은 해체되든지 신당으로 흡수되는 비극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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