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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쾌도난마’ 자리 빌려 ‘차도살인’
  • 김태공 논설위원
  • 승인 2013.05.2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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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투데이 김태공 논설위원] 국어사전에 따르면, 쾌도난마(快刀亂麻)란 잘 드는 칼(쾌도)로 마구 헝클어진 삼 가닥(난마)을 자른다는 뜻으로, 어지럽게 뒤얽힌 사물을 강력한 힘으로 명쾌하게 처리함을 이르는 말이다. 서양에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있는데, 알렉산더 대왕이 누구도 풀지 못했던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대담하고 지혜롭게 단칼에 자른 일로 영어로는 ‘cut the Gordian knot’라고 한다. 한편 차도살인(借刀殺人)은 남의 칼을 빌려(차도) 사람을 죽인다(살인)는 뜻으로, 음험한 수단을 씀을 이르는 말이다.

미디어오늘이 2011년 12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소위 종편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의결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채널A는 개국 이후 지난 4월까지 총 15차례의 법정 제재 조치(주의 9회, 경고 3회, 시청자에 대한 사과 2회, 관계자 징계 및 경고 1회)를 받았고, TV조선은 총 13차례의 법정 제재 조치(경고 8회, 주의 4회, 관계자 징계 및 경고 1회)를 받았다. 그 중에서도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가 가장 많은 4번의 법정제재를 받았다고 비난한다.

쾌도난마를 진행하는 박종진 앵커 및 관계자들로서는 억울함이 많을 것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소위 좌익 세력은 종편의 탄생 자체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아예 출연 자체를 거부하면서 조금이라도 자기들 귀에 거슬리는 내용에 대해서는 기를 쓰고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꼼수’ 멤버의 일원이자 허위사실 유포로 ‘공직선거법’ 위반죄로 징역 1년을 받았던 정봉주 전 의원은 “(조작 가능성이 없는) 생방송이기 때문에 다른 프로그램은 몰라도 쾌도난마에만 출연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앞세워 무한대의 자기 자랑과 덜 익은 생각을 마구 내뱉는 동시에 쾌도난마를 빙자해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면서 남을 죽이는 ‘차도살인’을 즐기고 있다. 앞서 정의한 대로 이는 비유적 표현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정봉주는 5월23일 쾌도난마 방송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쥐’로 지칭하면서 “쥐를 잡아야 한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위험수위가 올라가면서 스스로 중단하기는 했지만 세 치 혀를 잘못 놀려 1년의 영어생활을 한 전과자(前科者)로서 반성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관여하고 있는 협동조합을 공개리에 선전하고 광고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아마 남이 그랬다면 방송윤리에 어긋난다고 길길이 뛰며 비판했을 것이다.

시간 제약 때문도 있지만 협동조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얻은 경제·사회·문화적 인프라를 이용하는 보완적 성격인데,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대체적 성격으로 이해하는 무지를 내비쳤다.

차도살인의 압권은 소위 ‘종북세력’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우리 사회에 종북세력은 없다고 강변한 대목이다. 그는 종북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먼저, 김일성 가계의 3대세습을 반대하지 않고, 둘째로 핵무기 보유를 반대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북한에 가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만 종북세력이라고 정의했다. 한마디로 소가 웃을 일이다.

김일성이 우리 민족의 유일한 정통 계승자로 대를 이어 충성하자고 찬양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며, 북의 핵무기는 통일되면 우리의 자산이라고 부추기며, 일부러 북에 가서 아이를 낳고 그럴싸한 이름까지 받아오는 현실이 아닌가. 사실 종북세력이라 하더라도 북한에 가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말은 맞다. 편의상 머리 따로 몸 따로 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종미(從美)주의자가 미국에서 살기 위해 안달한다는 분석은 옳지 않다. 아무리 종미주의자라 해도 낯설고 불편한 미국보다는 풍요롭고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연륜에 걸맞은 성숙한 지혜없이 일방적인 소신만 고집하는 덜떨어진 한 칼럼니스트의 주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 ] 속의 단어로 대체할 때 무엇이 다른가.

“기실 한국 사회에서 지역과 색깔은 소통 장애를 일으키는 주된 요인이었습니다. 이른바 ‘보수[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인들과 그들을 대변해온 언론들은 지역과 색깔 두 가지로 진보[보수]인사들을 죽여 왔습니다. 여기서 죽였다는 말은 은유가 아닙니다. 실체적 진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보[보수]인사만 죽인 게 아니었습니다. 진보[보수]인사와 더불어 이 땅의 보수[진보]도 죽인 셈이지요. 2013년 현재 그들의 ‘자살’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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