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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그래 그 맛이 과연 어떠하더냐?’
  • 유연미 논설위원
  • 승인 2013.06.2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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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투데이 유연미 논설위원] 그 아픈 가슴에 또 한번 비수의 칼을 댄 망나니!

망나니를 전문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망나니>란 말은 <막+낳은+이→막난니→망난이→망나니>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되는대로 막낳은 사람> 곧 <못된 사람>을 이르는 말이었다. 원래 이 말은 지난날 봉건지배층들이 인민들을 멸시하면서 쓰던 말이다. 17세기 전반기 농민투쟁의 지휘자 고망난은 이름도 없는 노비였다. 그는 <고>가라는 성은 가지고 있었으나 이름이 없었는데 <망난>이란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양반놈들이 그를 천대하고 멸시하여 지어낸 이름이었다. 인민들도 막 낳은 놈 곧 못된놈들을 <망나니>라고 하였다. 봉건사회에서는 사형수의 목을 베는 집행인을 <망나니>라고 하였다.오늘날 이 말은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멸시하여 이르는 말로 쓰인다.’

지난 과거의 망나니는 생각보다 참혹한 역할을 수행했다. 사람의 목을 자르는 일을 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사형수라도 말이다. 지금은 그 망나니가 언행이 막되먹고 못된짓을 일삼는 사람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과거의 망나니 역할의 잔인함과 현대의 몹쓸 사람으로의 의미를 결합해 놓으니 지금 여기에 적합한 딱 한 사람이 있다. 정말 있나? 있다. 정말로 있다. 이 지구상에. 바로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현 오사카시장.

필자는 지난 컬럼에서 하시모토를 저질스런 망난이로 지칭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작명(作名)을 잘 한 것 같다. 작명비를 톡톡히 받아야 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마저 든다. 그 어느것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피해 할머니들의 아픈 가슴에 비열하게 또 한번 비수의 칼을 댄 망나니. 지금 그는 또다시 세계의 스타로 떠오르며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다름아닌 “된서리의 맛”으로 말이다.

하시모토는 입에 담기조차 민망스러운 저질스런 언어도단으로 세계의 스타가 되었다. 여기에 그는 강자에게 꼬리까지 내리는 비열함마저 보여주고 있었다. 주일미군에게 집창촌을 권장하도록 한 발언에 대해서는 그 발언을 취소하노라고 꼬리를 내리며 미국에 대해 머리를 조아렸다. 물론 그의 미국에 대한 사과 발언이 잘못 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백 번 천 번 해야 마땅하다. 다만, 강자에 대한 그의 비굴함에 속이 울렁거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비열하게 내린 하시모토의 꼬리를 예리한 칼로 단번에 내리쳐 버렸다. 시원하게 말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깨갱했다. 그리고 잘려나간 꼬리에 혼미백산 했다. 그가 다시 한번 치욕과 굴욕의 뒤범벅으로 세계의 스타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를 다시 세계의 스타덤에 올려놓은 것은 다름아닌 그의 샌프란시스코 방문계획. 그는 망나니 주제에 도시계획을 배우겠다고 미국 서부의 금융중심, 샌프란시스코 방문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망언이 활보하는 자신의 본국, 일본에 무엇인가 기여하고픈 모양이었나 보다.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그의 방문요청에 샌프란시스코는 미련 없이 ‘노. ’ 명쾌한 만루 홈런이다. 국가적 대(大) 망신이다. 이렇게 하시모토는 “된서리의 맛”으로 세계의 톱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이순간 나는 그에게 묻고 싶다. ‘그래 그 맛이 과연 어떠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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