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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한국과 베트남' <17>… 수류탄덮쳐 살신성인4부 포화속에 사라진 호국영령들
  • 최용호 소장
  • 승인 2013.07.0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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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상황서 몸 던져 많은부하 살린 고 이인호소령

제2해병여단 제3대대 정보장교 이인호 대위는 게릴라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획득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베트콩 첩자 및 포로를 신문해 첩보를 획득하는 한편 획득된 첩보를 현장에 나가 직접 확인하는 등 적극적인 정보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 적 은거지 확인차 현장 출동

   
▲ 이인호 대위의 생전모습

뚜이호아 평야에서 벌어진 청룡부대 해풍작전의 마지막 날이었던 8월 11일, 이 대위는 전날 체포한 베트콩 포로 7명을 신문한 결과 베트콩이 마을의 대나무 숲에 지하 동굴을 구축한 후 은거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내용을 대대장에게 보고한 이 대위는 자신이 직접 동굴탐색을 지휘하겠다고 건의해 승인을 받았다.

베트콩 첩자 2명을 대동한 이 대위는 헬기로 작전 현장에 도착했다. 제9중대의 엄호아래 베트콩 포로를 앞세워 수색을 계속한 결과 대나무 숲에서 직경 70㎝ 정도되는 동굴의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대위는 동굴탐색조로 편성된 제1소대 제3분대장 김찬옥 하사에게 동굴 내부로 수류탄 3발을 잇달아 투척하게 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동굴내부의 반응을 살폈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이에 이 대위는 김하사에게 탐색조 4명을 대동해 동굴을 수색하게 했다. 탐색조가 동굴에 들어간 후 얼마간의 긴장된 시간이 지나자 수류탄과 각종 실탄, 탄약통 등을 노획한 탐색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대위에게 탐색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베트콩 포로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파악했던 내용과 차이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탐색조로 하여금 다시 수색하게 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직접 확인하는 것 중에 하나를 택해야 했다.

평소에도 대대참모라는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최선두에서 작전을 수행해 왔던 이 대위는 후자를 택했다. 자신이 직접 동굴에 들어가 확인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가 앞장을 서면서 김하사 등 탐색조 4명을 뒤따르게 했다.

   
▲ 해병대교육기지사령부(진해)에 설치된 고 이인호 소령의 동상

◇ 적동굴 수색중 수류탄공습받아 전사

이 대위가 동굴로 진입해 확인한 결과 동굴은 ㄱ자로 꺾여 있었다. 동굴구조를 파악한 이 대위가 5m 정도를 앞으로 나아가자 옆으로 또 하나의 동굴이 있었다. “바로 이 동굴을 수색하지 못 했구나!”라고 직감한 이 대위가 커브를 돌아 계속 진출하려는 순간 전방에서 갑자기 수류탄 1발이 날아왔다.

이 대위는 뒤따르던 대원들에게 “수류탄이다! 엎드려!”라고 외치며 날아온 수류탄을 재빨리 집어들어 전방으로 던졌다. 그 사이에 또 하나의 수류탄이 날아왔다. 그 수류탄을 다시 집어들 여유가 없었던 이대위는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치며 장렬히 산화했다.

이 대위가 순간적인 희생정신을 발휘함으로써 그의 뒤를 따르던 대원들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살아남은 대원들은 분기탱천해 소총사격과 함께 수류탄을 투척하며 돌전했다. 그리고 동굴의 끝 부분에서 금방 사살된 베트콩 시체 5구를 확인하면서 칼빈소총 2정과 실탄 및 수류탄 등을 추가로 노획할 수 있었다.

이 대위가 지휘한 동굴탐색작전은 많은 교훈을 남겼다. 우선 동굴에 1차로 진입했던 탐색조가 후레쉬도 없이 들어가 동굴내부를 제대로 수색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때 동굴 속에 숨어있던 베트콩이 대원들을 공격했다면 그들은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많은 인원이 동시에 비좁은 동굴로 진입한 결과 위험에 노출된 인원이 너무 많았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그러나 베트콩의 첩보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자 했던 이 대위의 투철한 임무수행정신, 그리고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발휘한 살신성인의 희생정신과 투혼은 모든 장병의 귀감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인호 대위는 경북 청도군에서 출생해 대구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사 제11기로 임관했다. 제1해병사단 수색중대장을 역임한 후 베트남에 파병되었던 그는 부인과 1남1녀의 가족을 남겨 둔 채 단 하나뿐인 목숨을 바쳤다. 그리고 자신의 희생으로 뒤따르던 많은 부하들의 목숨을 구했다.

정부는 이인호 대위의 우국충정과 살신성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1계급 특진과 함께 최고훈장인 태국무공훈장을 수여 했다. 미국 정부도 은성무공훈장을 수여해 고인의 뜻을 기렸다. 해병대사령부는 장병과 사회각계각층의 성금으로 진해 교육사령부 영내에 고 이인호 소령의 동상을 건립했다. 그의 모교인 해군사관학교에서도 그의 동상을 건립하고 매년 ‘인호제’를 거행하면서 해군사관생도들이 그의 희생정신과 살신성인의 높은 뜻을 기리고 있다.

 

   
 

최용호 전쟁과평화연구소장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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