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최원일 논설실장] 드디어 내 차례다. 잔디밭에 놓인 볼을 잠시 만지작 거렸다. 이른바 키퍼와의 기싸움이다. 몇발 뒤로 물러섰다. 심판의 호루라기소리가 나자 고개를 들어 골문을 향해 뛰어든다. 좌우 어느 한쪽으로 키퍼가 엎어지면 골대 중앙은 텅 비게 될 것이다. 이렇게 예상하며 찼는데 이게 웬일인가. 상대가 넘어지지 않고 가운데 서서 그냥 받는 게 아닌가. 실축이다. 그날 우리팀은 날 포함해 두 명이 실패해 4대3으로 분루를 삼켰다. 실축하고 돌아서서 동료들 가까이 돌아가는 그 순간이 어찌나 죄스럽고 미안했던지. 한편으론 같이 실패한 동료가 있어 나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가 고맙기까지 했다. 경험자가 아니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순간이었다.

평소 연습하면서 열 번차면 8~9번은 모서리에 꽂히곤 했다. 그래 다들 믿고서 막내뻘인 나에게 기회를 줬는데 그런 참담한 결과를 빚고만 것이다. 초년 기자시절 한국기자협회가 해마다 주최하는 전국언론사대항 축구대회에서 직접 경험한 일이다. 기자협회 축구대회는 상당히 권위있는(?)있는 아마추어대회다. 매일 마주치는 체육부기자들이 대부분 소속사 선수로 뛰기 땜에 대한축구협회가 도와준다. 이른바 A매취만 맡는 국제심판들이 경기를 봐준다. 당시만 해도 전 언론사가 거사적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했다. 따라서 선수들도 2~3주 열심히 연습하고 시합에 나서곤 했다. 그 후로 몇번 더 시합에 나갔지만 PK는 사절했다. 다시는 악몽을 되풀이 하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긴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지난 7일 자정 벌어진 이라크와 일전에서 앞서 겪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PK에 실축한 두선수가 4강 진출이란 30년 꿈을 풀지못한 책임을 다 뒤집어 쓴듯한 글을 인터넷에서 봤다. “친구여 미안하다. 할말이 없다” 이런 글을 보면서 옛날 일이 떠오른 것이다. 그 후로도 기자협회 축구시합은 계속됐고 우리팀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다. 원래 시합이란 그런 것이다. 승패가 있기 마련이다. 공이 둥근 것처럼 승과 패가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이겼다고 너무 설칠 것 없다. 졌다고 너무 의기소침할 것도 아니다. 과거를 거울삼아 잘못을 다시 되풀이 하지 않으면 된다. 6학년 후반이 되다 보니 직장생활도 사업도 인생살이도 다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그때 열심히 뛰고 결과는 담담히 받아 드려라. 노력한 만큼 반드시 좋은 결과가 돌아 온다. 이런 말을 어린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대단한 파이팅을 보여 주었다. 나무랄 데 없이 잘 뛰었다. 결과는 너무 아쉬웠지만 한참 박수를 쳐줬다. 한국은 이라크를 상대로 2013 FIFA 20세 이하(U-20) 터키 월드컵 8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3-3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5로 패했다. 1983년 멕시코 대회 이후 30년 만의 4강 진출에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도 승부에 진 것은 몹시 서운하지만 경기면에서는 너무 훌륭했다. 한편의 드라마였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이 경기를 역대 최고 명승부 중 하나로 인정했다는 뉴스가 나온 것은 당연하다는 느낌이다.

비록 고배를 들긴 했지만 우리 선수들은 너무 잘했다. 값진 패배였고 좋은 경험이라 할 것이다. 게임내용이 충실하고 파이팅이 넘쳐 밤잠 안자고 기다린 펜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유명스타는 없지만 끈끈한 팀워크로 가끔씩 조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어린선수들이 한국축구의 미래를 보여주며 희망을 갖게 해 너무나 대견스럽다. 골문 앞에서 허둥대며 헛발질하는 형들 경기만 접하다 멋진 장면들을 연출하는 아우들이 대견해 하는 말이다. 축구펜들은 이런 경기를 보고 싶어 한다. 국가대표팀 형들도 새로 사령탑을 맡은 홍명보 감독을 중심으로 월드컵 본선까지 남은 1년 잘 갈고 담금질처서 좋은 결실 맺길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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