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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한국과 베트남'<24>… 68년구정공세 민간인 구출의 영웅 故 최범섭 중령4부-포화속에 사라진 호국영령들
  • 최용호 소장
  • 승인 2013.07.2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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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투 태권도 교관

   
▲ 최범섭 소령의 생전 모습

최범섭 소령은 1966년 6월, 베트남에 파병된 태권도 교관이었다. 당시 한국군은 1964년 9월, 의료지원단을 베트남에 파병하면서부터 10명의 태권도 교관을 파병해 남베트남의 군사교육기관에서 태권도를 가르쳤다. 그때부터 남베트남에서 태권도는 요즈음의 한류 열풍과 같이 군인은 물론 주민에게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태권도가 한국군을 알리고 위용을 과시하는 첨병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 태권도 열풍 대단-한국군 위용 과시 첨병역할

태권도의 열풍이 확산되자 주월 한국군사령부는 태권도 전문교관을 200여 명으로 늘려 남베트남 군단급부대에 한국군 태권도 지구대를 설치했다. 맹호, 백마, 청룡 등 각급 부대에서도 태권도를 적극 전파하도록 했다.

그 시기에 파병됐던 최범섭 소령은 메콩강 남쪽 ‘껀토’에 위치한 남베트남군 제4군단의 태권도 교육을 담당하는 제4지구대장이었다. 당시 껀토 일대에 주둔한 한국군은 태권도 교관단뿐이었다. 따라서 최소령은 그 지역에서 일하고 있던 40여명의 한국 민간인 기술자에 대한 후견인 역할까지 담당해야 했다.

메콩강 삼각주에 위치한 오늘날의 껀토는 바다와 같이 드넓게 펼쳐진 강줄기와 삼각주를 따라 하늘 높이 솟아있는 야자수와 이름 모를 온갖 과일나무들이 어우러져 밀림과 같은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그 곳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자연환경에 감탄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가 껀토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불과 40∼50년 전에만 하더라도 껀토는 매캐한 화약 냄새와 함께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전쟁의 아비규환이 계속되던 곳이었다. 특히 1968년 1월 31일에 시작된 베트콩의 '뗏(Tet)공세'는 치열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음력 1월 1일을 ‘뗏’이라고 부르며 우리나라의 설과 추석을 합한 만큼의 중요한 명절로 간주한다. 따라서 그들은 음력 1월 1일을 전후해 1주일 정도는 전쟁조차도 휴전하고 명절을 즐겼다. 1968년 1월에도 명절의 축제분위기는 어김없었다.

남베트남군의 많은 병력이 고향을 향해 휴가를 떠났으며, 우방국 병력들도 느긋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기업체도 문을 닫고 명절 연휴에 돌입했다. 껀토 일대의 기업체에 취업해 있던 한국인 기술자들도 명절 분위기에 고취되어 있었다. 그러던 1월 31일 새벽, 남베트남 전역에서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었다. 최범섭 소령이 근무하고 있던 껀토에서도 베트콩의 기습공격은 예외가 없었다.

   
▲ 베트남 남부지역. 호찌민시(구 사이공)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지역 중 하나다.

◇ 대규모 적공세속 민간기술자 구출위해 교전중 전사

그때 제4군단사령부에서 상황을 파악하던 최범섭 소령은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한국인 기술자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 그는 다음날인 2월 1일 아침10시경, 보좌하사관 윤청길 중사를 대동하고, 껀토 시내로 나가 민간인 기술자들을 소집했다. 12시까지 20여 명의 기술자들을 모을 수 있었다.

최범섭 소령은 그들을 남베트남군 제4군단 내 자신의 숙소로 긴급 대피시켰다. 이어 남베트남 군 관계자에게 장갑차 1대와 칼빈소총 20정을 대여 받아 민간인 기술자들을 무장시켜 자체 경비에 임하면서 사태가 호전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시내에 침투한 베트콩들의 도발은 점점 더 격화되면서 상황이 악화되기만 했다.

최범섭 소령은 나머지 20여명의 동포가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 그는 나머지 20여명의 기술자를 구출하기 위해 2월 6일 윤청길 중사를 대동하고, 시내로 달려갔다.

최범섭 소령이 보좌관 윤중사와 함께 시내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민간인 기술자들을 소집하고 있을 때인 10시20경이었다. 최소령 일행은 갑자기 조우한 베트콩 5명과 총격전을 벌이게 되었다. 그들과 교전에서 윤청길 중사가 초전에 전사했다. 최소령은 다리에 총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5발이 장전된 권총으로 응사하며, 교전을 계속한 결과 베트콩 2명을 사살했지만 결국 그도 전사하고 말았다.

최소령은 태권도 4단의 사범이었다. 그는 남베트남군 제4군단의 태권도 도장에서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태권도를 수련시켜 한국의 얼을 심는 사명감으로 근무해 오다가 베트남 파병 16개월 만에 젊은 생을 마쳤다. 정부는 최범섭 소령의 불타는 사명의식과 동포사랑 정신을 높이 평가해 그에게 최고훈장인 태극무공훈장과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또한 전쟁기념관은 그들 호국인물로 선정해 추모하고 있다.

 

   
 

최용호 전쟁과평화연구소장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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