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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한국과 베트남'<28>… 파병과 국제관계 <下>5부-베트남 파병이 한국에 미친 영향
  • 최용호 소장
  • 승인 2013.08.0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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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관계 강화가 비동맹-공산권과는 외교적 손실 초래

군사정부는 출범 초기 외교의 폭을 확대하기 위해 중립국가들과 관계개선을 시도했다. 당시 비동맹 중립노선을 표방하는 아프리카의 대부분 국가들이 유엔에 가입함에 따라 미국이 주도했던 유엔에서 ‘제3세계 국가들의 단결’이라는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파병 여파로 비동맹권 국가와 대결구도 심화

한국의 바램과 달리 베트남 파병의 여파는 컸다. 한국의 베트남 파병은 공산국가는 물론이고, 제3세계 국가들로부터도 비난을 받았으며, 심지어 몇몇 서방국가로부터도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프랑스는 제29차 유엔 총회에서 “한국의 입장을 반영한 유엔결의안의 공동제안국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이유로 거절했다.

북한과 중국은 처음부터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될 경우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고 경고했다. 반면 소련은 흐르시쵸프가 집권하는 동안 평화공존정책을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파병에 대해 다소 모호한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소련은 1964년 10월, 흐르시쵸프가 실각하면서부터 미국과 한국을 맹렬히 비난하였을 뿐만 아니라 “북베트남이 침략 당할 경우 적극적으로 원조 하겠다”며 미국을 위협했다.

◇ 비동맹권 17개국 미국과 한국비난에 앞장

1965년 3월 14일~15일,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비동맹 10개국 즉 유고슬리비아, 알제리, 스리랑카, 쿠바, 에티오피아, 가나, 기니, 말리, 튀니지, 이집트(통일아랍공화국)가 모여 베트남 문제를 논의했다. 그리고 ‘남?북 베트남의 적대관계 종식과 무조건 협상’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회의에 참가했던 쿠바와 말리는 “공동성명의 내용이 강경하지 못하다”며 지지하지 않았다. 그 후 9개국 즉 아프카니스탄, 키프러스, 인도, 이라크, 케냐, 네팔, 시리아, 우간다, 잠비아가 추가로 비동맹의 공동성명을 지지했다. 이 같은 비동맹 국가들의 공동성명을 ‘베트남 문제 해결에 관한 비동맹 17개국의 호소’라고 부른다. 그때부터 공동선언에 참가한 17개국은 미국과 한국을 비난하는데 앞장섰다.

   
▲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미 대사관 관저에서 열린 케네디 미국대통령과 후르시쵸프 소련 수상의 정상회담

◇ 비동맹권 정상-외상회의, 한반도서 유엔군철수 요구도

비동맹권 국가들은 1961년부터 비동맹국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이들은 1964년 10월 5일~10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제2차 정상회의에서 57개국 정상이 참가해 ‘분단국의 외세 간섭 없는 통일’을 촉구하면서 한반도문제를 거론했다. 1970년 9월 8일~10일까지 잠비아의 루사카에서 열린 제3차 비동맹 정상회담에는 63개국이 참가해 ‘한반도에서 유엔군 철수’를 최초로 공식 요구했다.

이어 1973년 9월 5일~9일까지 알제리아 ‘알지에’에서 열린 제4차 정상회의는 83개국이 참가해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과 유엔군사령부(UNC) 해체’를 요구하고,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반대’를 발표하는 등 북한의 통일방안을 지지했다.

한편 1972년부터는 비동맹 외상회의가 열렸었다. 그리고 1975년 제2차 비동맹 외상회의에 남?북한 등 여러 나라가 가입신청을 냈다. 그러나 한국과 필리핀의 가입신청은 거부되고, 북한을 포함한 북베트남과 PLO 등이 정회원으로 승인되었다. 또한 북한이 제안한 ‘한반도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이어서 비동맹 국가들은 다수의 힘으로 제21차 유엔총회에서 ‘언커크와 유엔사 해체’를 제의했다.

이와 같은 비동맹권의 한국에 대한 비난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으로 더욱 격화되었다. 또한 한국에 불리한 비동맹권의 각종 결의안 역시 한국군의 파병에 반대하는 공산권과 비동맹국들의 보복이었다. 따라서 한국은 베트남 파병으로 인해 비동맹권 외교에서 현저한 손실을 입은 데 반해 북한은 비동맹 외교에서 자신들의 제안이 채택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베트남 참전으로 인해 한?미 관계를 강화시킬 수 있었지만, 공산권은 물론 비동맹권으로부터도 ‘미국의 용병(傭兵)’ 또는 ‘미국의 신식민지’ 등의 비난과 함께 외교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이 베트남에 파병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공산권이나 비동맹권과의 관계는 크게 진전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주장도 있다.

 

   
 

최용호 전쟁과평화연구소장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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