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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한국과 베트남'<31>… 명분과 명예는 별개6부-베트남전쟁이 남긴 과제
  • 최용호 소장
  • 승인 2013.08.2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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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끝난지 50년-참전용사 명예회복은 아직 멀어

국군의 베트남파병은 긍정적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픈 이면의 이야기도 돌이켜 봐야 한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아픔은 베트남의 전선에 바쳐진 젊은이들의 목숨이다. 한국군 참전기간 8년6개월에 32만명이 참전하여 그중 5099명의 전사망자는 영원히 되돌아 올수 없는 길로 가고 말았다. 1만1000여명의 부상자, 그리고 오늘날까지 병상에서 신음하고 있는 10만 고엽제 환자 등의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된 한·베트남 국가관계도 고려해야한다. 참전용사들이 목숨 바쳐 지원했던 남베트남은 패망하고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그들을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파병의 명분과 참전용사의 명예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파병 당시 제기되었던 소위 ‘양민학살’, ‘용병’ 등에 관한 주장도 넓은 마음으로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이 지원한 남베트남 사라져 파병의 명분 손상

한국군 베트남파병 명분은 한국이 지원했던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 의해 무력으로 합병됨으로써 손상을 입게 되었다. 국제적으로도 비동맹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참전을 거세게 비난했다. 1980년대 말 탈냉전의 시대와 함께 도래한 이념을 대신하는 국익의 시대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팔머스톤(Viscount Palmerston)은 “영국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라고 하면서 세계를 지배하던 대제국의 위치에서 중위권 국가로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영국의 위상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국제관계는 국익과 국제환경에 따라 적절한 전략이 필요하다. 조선시대 명나라와 의리만을 고려했다가 청나라의 침입을 자초했던 교훈을 되새겨봐야 한다. 광해군의 실리외교가 재평가를 받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1992년 12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과 국교를 회복했다. 이어 1998년 12월 하노이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쩐득르엉 베트남 국가주석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베트남의 독립을 위한 전쟁에 한국군이 파병된 것에 대해 사과했다.

국내에서는 참전단체를 중심으로 김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높지만 베트남에서는 한국의 대통령이 직접 사과의사를 표명한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급속하게 진전된 것도 김 대통령의 사과에 힘입은바 크다고 할 수 있다.

   
▲ 한·베트남 수교(1992. 12. 22). 이상옥 당시 외교부장관이 하노이를 방문해 양국의 수교를 위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 참전명분 깎아내리기 위한 ‘양민학살’ ‘용병’ 시비도

국내의 일부 언론과 단체는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었던 한국군이 베트남의 양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고 주장하면서 현지에서 활동했던 유학생의 전투현장 방문결과를 그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 측에서 공개한 일부 자료를 인용하기도 하며, 사실확인이 안되는 일부 참전용사의 무용담(?)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확실한 증거 없이 참전의 명분을 깎아내리고 헐뜯기 위한 의도로 실제보다 부풀렸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한국과 베트남 양국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일을 지금에 와서 거론할 필요가 없다. 지금은 과거를 덮어두고 양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상호 협력해야 한다. 전쟁과 관련하여 책임을 따진다 하더라도 전쟁의 주체였던 미국과 따질 것이다.”

베트남전쟁은 일반적인 정규전 형태의 전쟁과 달리 철저하게 게릴라전 양상 하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전투의 대상이나 전투지역의 구분이 없었다. 따라서 정규전형태의 전쟁에 비해 민간이 피해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베트남전쟁 시 민간인 피해의 실상과 함께 게릴라전의 특수성과 민간인 피해의 함수관계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한편 ‘용병(傭兵, Mercenary Soldier)’이란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전투에 종사하는 자”를 가리킨다. 즉 용병은 개인의 자격이라는 것이다. 국가에 의한 파병에 용병이라는 개념은 맞지 않다. 6·25전쟁 시 북한의 지원을 위해 파병된 중국군은 소련의 영향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중국군을 용병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따라서 베트남파병과 관련된 문제는 전쟁의 명분에 관한 문제이지 용병의 문제는 아니다.

◇ 국가명령에 순응한 참전용사들의 명예회복 시급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앞둔 시점에서 참전용사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서 한국군의 파병을 “자유수호를 위한 파병”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베트남 정부가 반발했다. 그러자 외교통상부장관이 급거 베트남을 방문해 사과하고 법안상정을 보류했던 사례도 있었다. 따라서 현재까지도 한국군의 참전명분은 논란의 소지가 남아 있다.

반면 참전용사의 입장에서는 본다면 그들의 참전 사실과 전쟁의 명분은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참전의 명분을 따져가며 참전 여부를 결정하기보다는 국가의 명에 따라 국익을 위해 참전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의 참전은 장병들의 동의를 받아 이루어진 것으로 참전용사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일부 반론도 있다. 그러나 이는 초기 참전장병의 입장에서 본다면 국가가 파병을 결정하고 참전부대를 지정해 소속부대원들은 명령대로 훈련받고 참전한 것이다. 군대와 군인은 국가의 명령에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이 당연한 귀결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참전기간중 교체병력은 지원자를 먼저 선발하고 나머지는 차출이었다는 게 참전자들의 증언이다. 따라서 그들의 파병자체는 동의를 했건 차출이건 모두 애국심의 발로인 것으로 이들 참전용사들의 명예회복이 시급하다 할 것이다.

 

   
 

최용호 전쟁과평화연구소장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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