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게 공부하자…허준 <동의보감> 넘어서자

       ▲ 서효석 편강한의원 원장

불가의 선맥(禪脈)은 부처님 사후 1000년이 지난 시점에 인도의 달마 대사가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동쪽으로 넘어오게 됐다. 달마가 중국 선맥의 초조(初祖)가 된 이래 혜가, 승찬, 도신, 흥인을 거쳐 육조(六祖) 혜능에 이르러서 단 한 명의 제자에게 법통을 전하는 일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이후 세월이 흘러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경구로 유명한 임제 선사(禪師)가 나타났는데, 임제의 스승은 황벽이며, 황벽의 스승은 백장이다.

일찍이 황벽이 스승 백장에게서 공부를 하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었을 때 질문하는 스승의 뺨을 한 대 후려 갈겼는데 얻어맞은 스승은 껄껄 웃으며 좋아했고, 황벽의 제자 임제도 깨달음을 얻었을 때 스승의 뺨을 올려붙이고 큰소리를 질러 압도해 버렸다. 역시 스승 황벽도 얻어맞고 좋아라했는데 이는 눈 푸른 제자의 공부가 자신을 넘어서서 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기뻐한 것이다. 이를 두고 후세인들은 '제자가 스승의 뺨을 때려 가르침에 보답했다'라고 표현한다. 임제는 깨달음 이후 제자를 가르칠 때마다 큰소리로 '喝'을 질러댔는데 여기에서 '덕산은 몽둥이로 때리고, 임제는 큰소리를 질러 댄다'는 뜻의 유명한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란 말이 나왔다.

지금 산청에선 9월6일부터 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열리고 있다. 올해가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이 되는 해라 이를 기념해 성대한 행사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동의보감은 1596년에 허준 선생이 선조의 명을 받고 저술하기 시작해 무려 14년 만인 1613년에 25책으로 완성 발간됐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돼 그 가치를 더하기도 했지만 필자는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에 즈음해 감회가 남다르다.

물론 성대한 행사에 가슴이 벅차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현재 우리 한의계(韓醫界)가 처해 있는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거시적으로 볼 때 양방에 비해 한방은 아직도 상당한 열세에 처해 있고, 미시적으로 볼 때 천하의 수재들이 한의대로 몰리던 일도 어느덧 지나간 일이 되어가고 실제로 한의대를 졸업한 한의사들이 처한 현실 역시 만만치 않다. 이 모든 상황을 현실 탓으로만 돌리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책임은 우리 한의사들 자신에게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선승(禪僧)들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 스승의 뺨을 때려 그 가르침에 보답하듯이 우리 한의사들도 스승을 넘어서는 무서운 공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동의보감이 한의학의 영원한 성전(聖典)임은 틀림없지만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후학들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날 오행(五行)과 오장(五臟)의 관계 하나만 가지고도 일자일구(一字一句)를 더하지도 빼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한의학 현실이다.

이런 공부를 가지고 허준 선생에게 보은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폐장(肺臟)이 오장(五臟)의 으뜸 장부(臟腑)라는 사실을 새로이 깨닫고 이를 알리고 있는 필자가 동의보감 400주년에 즈음하여 감회가 남다른 것은 바로 이런 눈 푸른 후학 한의사들이 많지 않음을 안타까워 하는 것이다. 필자 역시도 더 노력하겠지만 동의보감을 넘어서는 의서(醫書)를 쓸 더 많은 후학들이 나오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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