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방을 ‘비과학적’이라 손가락질 하나

▲ 서효석 편강한의원 원장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란 글귀만 보고 이것이 유명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의 저서 제목임을 아는 독자라면 상당 수준에 있는 식자(識者)임이 틀림없다. 이 책의 원제는 인데, 말 그대로 번역하면 ‘물리학의 도(道)’이다. 그러나 물리학의 도는 자칫 ‘물리학의 길’로 읽혀질 위험성이 있다. 책 속에서 저자는 물리학을 서양과학의 정수(精髓)로, 도(道)는 동양사상의 정수로 봐서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속에 들어있는 유사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으므로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으로 제목을 바꿔 단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각설, 필자가 왜 이렇게 어려운 책을 언급하는가 하면 그것은 바로 한의학 자존심이, 또는 한의학 미래를 향한 단초(端初)가 바로 카프라가 지적하는 그 관점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질량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언제나 빛의 속도로 진행하는 특별한 종류의 입자, 즉 광양자(光量子)의 발견은 물리학에 일대 혁신을 가져와 소위 양자물리학이란 새로운 분야를 낳았다. 입자이자 파동이 될 수 있는 물질의 아원자적(亞原子的) 단위는 물질에 대한 고전적 관념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아원자적 단계에선 관찰자 시각에 따라 그것들이 때로는 입자로 때로는 파동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확률파라는 새로운 개념이 나온다. 이렇게 물질을 최소 단위까지 뚫고 들어가 보면, 자연은 어떤 독립된 구성체를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전체의 여러 부분 사이에 있는 복잡한 그물망 형태로 나타난다.”

아주 짧게 요약하면 서양물리학 기본은 객관이었는데 현대물리학이 발달하면서 물질의 궁극(窮極)에까지 거의 다가가보니 놀랍게도 객관이 아닌 주관이 거기에 있더라는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입자인가 파동인가 하는 단계에서 그것이 파동으로 되느냐 입자로 되느냐는 관찰자의 주관적 의지에 달린다는 것이다. 필자가 물리학에 식견이 부족해 더 이상 쉽게 설명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다만 ‘그래서 그것이 한의학과 어떤 관계인가’라는 물음에만 답하겠다. 양방이나 현대인이 한의학을 논할 때 흔히 비과학적이라고 평한다. 개개의 현상을 관찰 분석해서 그 결과로 나오는 도식화된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고 주관적 경험치(經驗値)로 질병을 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한방의 과학화’를 부르짖기도 한다.

그러나 카프라의 이야기를 한 번 더 인용하면, “앞으로 개개의 현상을 관찰 분석하는 방법으로는 물리학이 궁극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무엇이 대안인가? 바로 전일(全一)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별개가 아닌 전체가 얽혀서 서로 영향을 주는 전일을 대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신천지가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한방이야말로 인간의 병을 전일로 다루는 의술이 아니든가? 한방은 하나하나의 병을 따로 보지 않고 몸 전체를 보는 통치(通治)를 근간으로 한다.

그렇다면, 최첨단 현대물리학이 스스로 이러한 논지(論旨)를 피력하고 있는 이 마당에 누가 한방을 비과학적이라고 손가락질 한단 말인가? 한방이 과학화를 추구함은 마땅하나, 그렇다고 한방이 과학화에만 매달린다면 오히려 그 정수를 잃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이제 우리 한방이 비과학적이란 굴레를 벗어던지고 당당하게 다시 자리매김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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